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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 스리랑카 사람 세나 씨가 구원을 얻기까지 우리가 배운 ‘고생과 수고’의 뜻

왜관 소식신권철 | 왜관       한국(왜관)에 온 지 올해로 10년째를 맞은 어느 스리랑카 부부 중 남편 세나 씨가 구원받은 그간의 상황을 소개하려 한다.     이들 부부는 2년 전 서울 소재 스리랑카 대사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지난 5월 20일에는 첫아이도 순산했다. 세나 씨는 올해 35세이고 부인 투사리 씨는 33세로 보기 드문 잉꼬부부다. 세나 씨는 간혹 “나는 투사리 없이는 못 살아.” 하면서 시샘 나는 말도 하곤 한다. 이들 부부가 살고 있는 곳은 칠곡과 구미의 중간 지점이다. 1층에는 세나 부부가 살고 있고 내가 지난 4월부터 2층에 세 들어 살고 있다.     세나 씨는 우리말 실력도 대단하다. 이들 부부와 이야기하노라면 피부색만 다를 뿐 의사소통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이 부부와 한 지붕 아래서 살다 보니 아침저녁으로 인사말 한마디 정도는 나누었는데, 스리랑카도 영어가 통용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들에게 영어를 배울 생각으로 자주 말문을 열었다.     5월 9일 왜관 형제자매들이 모인 자리에서 나는 “우리집(1층)에 스리랑카인이 살고 있는데 말씀을 전해 봅시다.” 라는 말을 꺼냈다. 그 자리에 있던 형제자매들은 한동안 잠잠했다. 하지만 힘을 실어 준 사람들이 있었고, 그렇게 전도의 발걸음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말씀을 듣기까지, 방문을 통해 이 부부에게 도움을 주고     세나 씨가 3주간의 짧지 않은 일정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듣게 된 것에는 형제자매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인이 해산을 앞둔 시점에서 이들에게 함께 전도하자는 의논이 있었는데, 그 직후 몇몇 자매들이 세나 씨 부부가 살고 있는 집을 방문하여 여러 가지 상황을 살펴보았다. 만삭인 투사리 씨는 해산의 진통이 엿보였었다. 바로 구미 소재의 한 산부인과의 분만대기실로 옮겨졌다. 분만대기실로 찾아든 몇몇 형제자매들은 꽃다발과 다과를 준비하여 따스한 위안의 말을 건넸다.     이런 모습을 옆에서 목격한 세나 씨는 우리에게 본인에 대한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털어놓았다. 자신의 아버지는 고기 잡는 어부이고 아내의 부모는 큰 건물을 소유한 부자라서, 결혼을 위해 한국으로 도망쳐 왔다는 말을 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물 건너(한국)에서 일궜다.” 며 자신의 애틋한 사랑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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