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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 도도히 흐르는 강물이 되어

문명래 | 카자흐스탄       교만으로 굳어 있던 내 영혼의 벽     저는 조금 종교성이 강했나 봅니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석가모니가 생로병사의 문제가 풀리지 않아 어린 나이에 출가한 것처럼 저도 비슷한 고민에 빠졌고, 나를 끔찍이 사랑하던 오빠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인생에 영원성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로 인해 심한 허무감에 빠졌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문학도 철학도 그런 갈증을 없애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겉으로는 행복하고 무난한 생활이었지만 늘 정신적으로 안주하지 못하고 방황했던 것 같습니다. 등산을 좋아했기 때문에 한때는 스님들과 친해지면서 불교에도 관심을 가졌고, 수녀님이 좋아져서 성당에도 다녀 보았습니다. 청년 시절에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었지요.     그러다 종국엔 교회(편의상 교회로 지칭함)로 마음이 모아지면서 열심을 다하게 되었습니다. 직장 생활로 피곤해서 퇴근을 해도 어디에서 부흥회가 열린다는 말을 들으면 밤중에 날듯이 찾아가 부흥회에 참석하곤 했습니다. 새벽 기도회는 물론이고 금요 철야기도회에도 참석했는데 철야기도회에서 기도를 할라치면 너무 졸려서, 나중에는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지 않고 ‘아저씨’ 운운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주님이 싫어하시는 중언부언인 기도였지요.     주일이 되면 두 곳의 교회를 다녔는데 한 곳은 남편과 같이 꼭 참석해야 하는 교회였고(남편의 직책상), 또 다른 한 곳은 설교 스타일이 제 취향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한번은 어느 주일 오후 집에서 무슨 일로 신경질을 부린 적이 있었는데 남편 왈, “교회를 두 군데만 다녀서 쬐끔 부족해서 그러니까 저녁에 한 군데 더 다녀오라” 고 해서 웃은 적도 있었습니다.     젊을 때 남편의 직장 관계로 대만에서 몇 년 동안 산 적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도 친했던 한 목사님은 성찬식만 하면 늘 울면서 인도하셨습니다. 이사야 53장 4, 5절을 읽으시면서요. 저는 그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려 내 죄를 다 사해 주셨으니 이제부터는 평안 가운데서 천국처럼 살아야지.’ 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대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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