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멸망“다 무너뜨리우리라”
AD 66년 로마시대 네로 황제의 통치 말, 예루살렘의 징세관 게시우스 플로루스가 유대인들을 무자비하게 착취하고 성전의 보화를 약탈하자 유대인들은 폭동을 일으켰다. 네로 황제는 이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총사령관 베스파시아누스를 파견했고, 베스파시아누스는 예루살렘에서 먼 지방부터 차츰 유대 땅을 점령해 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네로가 자살을 하고 베스파시아누스가 동방 여러 군단의 추대로 로마의 황제가 되자, 그는 아들 타이터스에게 예루살렘 폭동의 진압을 맡겼다.
AD 70년 예루살렘 성이 폭동 진압의 과정에서 함락되었다. 성전 벽돌 사이 사이에 ‘황금’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 로마군에 의하여 성전도 허물어졌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이 이루어진 역사적 사실이었다.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미석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누가복음 21:5-6)
이후 성전이 허물어진 자리에는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고, 예루살렘에 유대인의 출입이 금지되면서 전세계로 흩어진 유대인들은 2천여 년에 걸친 긴 방랑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유대인 박해“그 뒤로 칼을 보내리라”
세계 각국으로 흩어진 유대인들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특히 기독교를 국교로 믿었던 유럽에서는 성경 교리에 대한 오해로 유대인들에 대한 끊임없는 박해가 이어졌다.
이러한 유대인 박해는 14세기 중엽, 유럽에 흑사병이 돌면서 본격화되었다. 유럽인들은 몸을 씻지 않아 비위생적인 생활을 하는 데 반해, 유대인은 토라(모세5경)를 읽기 전 몸을 깨끗이 하는 등 청결한 생활을 했기 때문에 흑사병의 피해가 훨씬 적었다. 이를 못마땅히 여긴 사람들은 유대인이 우물에 독을 탔기 때문에 흑사병이 돌았다는 소문을 냈고, 이 소문은 유대인 학살을 더욱 부추겼다.
1881년 러시아 황제 알렉산더 2세가 살해되고 그 살해 음모가 유대인에 의한 것이라는 소문이 나면서부터 러시아에서도 ‘포그롬’이라 불리는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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