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7:1-10 1999. 3. 20 강연
대제사장이 가로되 이것이 사실이냐 스데반이 가로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가라사대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 아비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시방 거하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그러나 여기서 발 붙일 만큼도 유업을 주지 아니하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저와 저의 씨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 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씨가 다른 땅에 나그네 되리니 그 땅 사람이 종을 삼아 사백 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종 삼는 나라를 내가 심판하리니 그 후에 저희가 나와서 이곳에서 나를 섬기리라 하시고 할례의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더니 그가 이삭을 낳아 여드레 만에 할례를 행하고 이삭이 야곱을, 야곱이 우리 열두 조상을 낳으니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저와 함께 계셔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 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저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치리자로 세웠느니라 (사도행전 7:1-10)
대제사장의 질문과 스데반의 대답
사도행전 7장은 스데반의 설교 내용입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베드로의 설교나 스데반의 설교를 보면 내용이 길지 않습니다. 그래서 언뜻 생각하면 짧은 시간 동안에 말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만 사실 이 설교는 아주 길고 방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설교를 성경에 함축적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7장 내용은, 6장의 내용에 대해 대제사장이 “이것이 사실이냐” 하고 스데반에게 심문하듯 물은 질문에 대한 스데반의 대답입니다. 스데반이 질문과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답을 한 것 같기도 합니다만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분히 의도적으로 답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대답은 유대인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스데반의 설교를 다 들은 사람들은 그를 돌로 쳐 죽였습니다. 스데반의 답은 이미 죽음이 결정된 답이었던 것입니다. 스데반은 자신을 죽이려고 모인 사람들 앞에서 살려달라고 사정하는 소리는 조금도 하지 않고 그들이 반드시, 분명하게 알아야 할 내용을 이야기했습니다.
스데반의 설교는 사도행전 6장에 기록된 말씀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6장에서는 사람들이 스데반을 죽이려고 거짓 증인들을 세워 스데반을 고소했는데, 6장 8절부터 7장 1절까지 이어서 읽어 보면 내용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다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리버디노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이라는 각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으로 더불어 변론할새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 사람들을 가르쳐 말 시키되 이 사람이 모세와 및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 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가로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스려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 대제사장이 가로되 이것이 사실이냐 (사도행전 6:8-14, 7:1)
15절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는 중에도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는 말이 있는데, 이 내용은 앞뒤 내용과 흐름이 달라 제외하고 읽었습니다. 7장 1절을 보면 대제사장이 스데반에게 거짓 증인들이 고소한 말이 사실이냐고 묻습니다. 거짓 증인들이 스데반을 무어라 고소했는지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가로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스려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사도행전 6:13-14)
이 고소 내용과 “이것이 사실이냐”고 물은 대제사장의 질문을 연결해서 생각해 보면, 스데반이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답이 나옵니다. 그런데 스데반은 그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거짓 증인들을 세운 유대인들은 스데반을 고소할 때, 스데반이 율법을 거스려 말한다고 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준한 예배 의식이라든가, 율법대로 행하는 유대 종교 의식 등을 바꾸려고 한다며 고소한 것입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그들의 고소에 그대로 답하지 않고 범위를 넓혀, 율법이 주어지기 약 400년 전의 일부터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율법이 있기 훨씬 이전의 일을 말하면서 율법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모세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는 이유가 무엇인지, 또 성전에 모여 짐승을 잡아 예배를 드리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대제사장의 귀에는 맞지 않았지만 스데반의 대답은 정확한 것이었습니다. 잠언에는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그에게 대답하라 두렵건대 그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길까 하노라” (26:5) 는 말씀이 있는가 하면,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지 말라 두렵건대 네가 그와 같을까 하노라” (26:4) 는 말씀이 있습니다. 질문하는 인간의 됨됨이를 보아가면서 답을 하라는 말입니다. 스데반은 종교 지도자들에게 유대교에서 말하는 법도와 예절에 따라 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성령의 힘을 받아서 근본적인 것, 즉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 때의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유대인들이 꼭 알아야 되는 것을 설명했습니다.
스데반을 고소한 이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며 자신들이 믿는 신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면서도, 그들보다 한참 후대 사람인 모세가 하나님께 받아 전해 준 율법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 율법에 따라서 하나님 앞에 예를 갖추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스데반은 ‘너희가 모세의 율법을 지킨다고 하지만 모세 때에는 너희들이 나를 고소한 이유인 이 성전이 있지도 않았다. 그때에는 광야에서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성막을 지었다. 너희가 율법을 따라 지키는 할례도 율법이 생기기 4백 년 전에 주신 것이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생기기도 전에 그 씨에게 약속하신 것이지 않느냐.’ 하고 훨씬 근본적인 것을 설명했습니다. 그를 고소한 사람들이 ‘네가 이 거룩한 성전을 짓밟고 이 거룩한 율법을 모독했다.’ 하는 압력을 넣고 있는데, 스데반은 유대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들어 이야기하면서 아브라함은 거룩한 곳이라고 하는 이 가나안 땅에서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 지도자들과 유대인들이 모인 이스라엘 땅에서 그들을 부르시고 일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이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기 훨씬 이전에 조상 아브라함이 바벨론 땅, 갈대아 우르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를 부르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들이 거룩하다고 주장하는 곳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다. 우리 조상도 이곳이 아닌 전혀 다른 곳에서 부르셨지 않느냐.’ 하고 스데반은 말을 시작합니다.
대제사장이 가로되 이것이 사실이냐 스데반이 가로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가라사대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 아비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시방 거하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사도행전 7:1-4)
메소보다미아는 바벨론 땅을 말합니다. 바벨론은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았던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이 만연한 곳에서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며 살고 있을 때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창세기 12:1-2)
창세기 11장 마지막 부분에 보면,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으로 가기 위해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그래서 12장 처음에 기록된 이 말씀은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인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 있을 때 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15장 7절에도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낸 여호와로라”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 곧 이스라엘 땅을 아브라함에게 주시려고 그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아버지 데라를 비롯한 가족들과 함께 가나안 땅으로 향하다가 하란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버지가 죽은 후에 다시 가나안 땅으로 향했습니다. 그렇기에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말씀은 하란에서 떠나라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은 갈대아 우르입니다.
어떤 사람이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탔는데 비행기가 불시착을 해서 일본에 내렸다가 그곳에서 머무르게 되었다고 합시다. 어쩌다 거기서 몇 년을 지내다 미국에 들어가 살게 되었다면, 중간에 머물렀던 일본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이 되겠습니까?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아브라함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은 갈대아 우르였습니다. 느헤미야서에도 “주는 하나님 여호와시라 옛적에 아브람을 택하시고 갈대아 우르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시고” (9:7)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살던 갈대아 우르는 우상 숭배가 만연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곳을 떠나서 자신이 약속한 땅으로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자기의 고향과 친척을 떠나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아직 하나님의 목적하시는 바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의 몸은 그 땅에 들어와 살게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후사를 주시고 또 그 땅을 그와 그의 후손의 것으로 주시겠다는 약속은 남아 있었습니다.
스데반을 둘러싼 많은 유대인들은 스데반으로부터 자신들의 조상이 어떻게 이 땅으로 들어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들의 조상이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온 것은 무엇 때문이었나 하는 문제에 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요 15:4)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아브라함이 육체를 가지고 들어가는 모습, 예수께서 “내 안에 거하라”고 부탁하신 말씀처럼 유대인들이 성전 안에 들어가서 예배를 드리고 율법을 따라서 예를 지키는 모습들은 모두 천국을 향하는 그림자입니다. 아브라함이 우상 숭배의 근거지인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나, 유대인들이 하나님이 주신 언약을 따라 행하는 것은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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