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여성동아 장편 공모에 ‘그대 앞에 가는 길’이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1999년 장편소설 ‘그 바다는 어디로 갔을까’로 삼성문학상을 수상했다.주요작으로 ‘도둑’, ‘버리지 않는 남자’, ‘아무도 증명할 수 없는 나’ 등이 있다.
몰리에 대한 나의 추측
오늘 아침이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었다. 다만 공휴일이니까 아침을 한 시간 연장한 어머니는 여섯 시에 습관처럼 창으로 다가가서 저 멀리 동쪽 바다에서 막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창을 열면 간간하면서도 상쾌한 바다의 냄새가 몰려든다. 밤새 창으로 다가와 붙어 있다가 창을 열기가 무섭게 안으로 곤두박질치듯이 달려들어온 바다의 냄새?! 서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서울의 아침은 한 마디로 스모그처럼 부연 강 안개나, 혹은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지치고 우울한 나무들과 건너편 뻔뻔스러운 아파트 창이 전부였다. 방으로 들어 온 어머니가 앵무새처럼 ‘새 나라의 어린이’를 부르며 이불을 걷어내면 나는 눈을 감은 채 비틀거리면서 도어 쪽으로 걸어나가곤 했다. 난 정말 ‘새 나라의 어린이’ 같은 건 싫었다. 우리나라는 절대로 좋은 나라가 아니다. 나는 해가 뜨기 시작하면 마술빗자루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뛰어서 이제 막 밤이 시작되는 나라로 떠나고 싶었다. 단 하루만이라도 우리 집 고양이 몰리의 뱃가죽처럼 따뜻한 침대 속에서 실컷 잠을 자고 나서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면서 일어나 보고 싶었다. 난 그저 고양이로나 태어났으면 좋을 뻔했다.
야옹?! 어느 누구보다 예의바른 몰리의 아침인사다. 그리고 나서 목을 쳐들고 쥐처럼 뚫어지게 나를 쳐다본다. ‘넌 참 이상해, 이해할 수 없어.’ 라는 투의 의문을 담고서. 쥐를 쫓아 본 일이 없는 고양이처럼 백치에 가까운 몸짓으로 하품을 하면서, 아침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허둥거리는 한심한 여자애를 애처로운 시선으로 올려다보았다. 고양이는 쥐보다 크고 강한 힘을 가졌으면서도 가냘픈 목소리와 황홀한 시선으로 사람들의 환심을 장악한다. 약자임에도 불구하고 신경을 거슬리는 단말마적인 소리와 옹골진 까만 시선의 쥐를 보는 일은 왠지 소름이 돋는다. 포동포동한 쥐를 볼 때 포동포동한 고양이를 보는 것보다 훨씬 가증스러운 이유는 단지 고양이에 대한 관념적인 친밀감 때문일까? 나는 논리적이지 않았지만 몰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나의 아침은 눈까풀을 눌러 내리는 무거운 잠을 밀어내기 위하여 입이 찢어지도록 하품을 하면서 화장실로 가는데서 시작되었다. 뒤 이어 거의 정확한 타이밍으로 한발 앞서 화장실을 나오는 효진의 판박이 같은 잔소리가 시작된다.
제발 입 좀 막아. 목젖이 보인단 말이야.
느긋하게 소파에 주저앉으면서 실컷 잘난 척을 하는 저 웬수, 저 아이의 아침은 왜 언제나 백치에 가까울 만큼 무심한 생기로 넘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대한민국의 모든 어머니들과 한 치의 오차 없이 그 아이를 부추긴다.
우리 효진이는 정말로 새 나라의 어린이야. 장차 넌 무엇이든 되고 말 거야.
흥, 무엇이든 안 되는 사람도 있나. 꿈쟁이 요셉처럼 웃고 있는 저 웬수를 향하여 내가 혓바닥을 있는 대로 내미는 동안 몰리가 효진의 무릎 위로 기어올라가서 앙큼하게 목을 움츠리며 안긴다. 내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아는 몰리는 절대로 내 무릎 위로 올라오지 않는다. 늘 내 앞에서 일 미터 간격을 두고 서서, 거의 형이상학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다가 앞발을 쳐들면서 앙증맞은 모습으로 세수를 한다던가, 꼬집어 주고 싶을 만치 천연덕스러운 공주병 환자처럼 하품을 하면서 깃털 하나도 없는 꼬리를 공작새처럼 들어보지만, 나는 녀석이 어두운 주황빛 전등이 켜져 있는 정원 한 쪽에서 토실토실한 쥐 한 마리를 잡아먹고는 포만감에 젖은 눈을 지긋이 감은 채 앞발로 피 묻은 주둥이를 말끔히 닦아내던 모습을 절대로 잊지 않았다. 나는 그 때, 살인 현장을 목격한 아이처럼 공포에 휩싸인 채 녀석의 거나한 만찬이 끝날 때까지 은행나무 뒤에서 숨도 쉬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 때 강자가 어떤 식으로 약자를 먹어치우는지 알았다. 정원 뒤켠 오래 된 은행나무 둥지 쪽에서 쪼르르 달려나온 쥐는 과식을 했었는지 불룩한 배 때문에 몸놀림이 둔해 보였다. 바로 그 때 진분홍 빛 영산홍이 흐드러진 그늘 아래 숨어 있던 몰리가 번개처럼 빠른 동작으로 날아오르는 순간, ‘찌익’ 하는 단말마 소리와 함께 통통한 쥐는 몰리의 우악스러운 발톱 밑에서 눈을 똥그랗게 뜬 채 바동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 때의 몰리의 모습을 절대로 잊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어머니나 효진이의 무릎 위에서 하품을 하며 꼼지락거리는 앞발로 눈곱을 떼어내면서 세수를 하고 새초롬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던 몰리가 아니었다. 정복자의 그것처럼 단단한 앞발로 쥐의 전신이 으깨지도록 힘차게 누르고 서서 어두운 하늘을 향하여 소름이 끼치도록 잔인하고도 음산한 미소를 지어 보이던… 이윽고 빨간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침을 만들고 마른 입안을 적신 다음 송곳처럼 날카로운 이빨로 아직도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있는 쥐의 머리통을 찢어발기던 모습을 절대로, 절대로 잊을 수 없었다. 그 후 녀석의 낯짝을 볼 때마다 나는 녀석을 증오하면서 혼잣소리로 말했다.
비열하고 잔인한 놈, 이중인격자.
하지만 녀석은 도대체 자기가 왜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다는 식으로 말끄러미 나를 바라보다가 사랑하는 이의 심금을 울리고도 남을 정도의 가냘픈 음성으로 야옹거리면서 마루로 들어간다.
응, 귀여운 몰리야, 잘 잤니? 어젯밤은 어떤 추억에 젖었었니?
사랑하는 몰리의 등을 쓸어 내리면서 효진은 애늙은이처럼 묻는다. 엄마와 함께 뮤지컬 캣츠를 보고 와서 그 애는 몰리를 바라보는 시선을 달리하게 되었다. 하지만 몰리는 이곳으로 와서 얼마 후에 주변을 얼쩡거리는 어떤 수고양이를 따라서 잘 있으라는 인사 한마디 없이 떠나버렸다. 충성스러운 개는 아무리 멀리 가 있어도 제 주인을 찾아 돌아오건만 이 앙큼한 녀석은 어떻게 된 셈인지 숫제 꿩 구워 먹은 식이 아닌가. 드는 정은 없어도 나는 정은 있다고 녀석이 없어져 버리자 우리 집은 마치 어딘가 한 귀퉁이가 비어 있는 허전함을 지울 수 없었다. 바람소리에 종잇장이 부스럭거려도 몰리가 아닌가 하고 뒤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새끼를 가지면 돌아올 거라고 외숙모는 말했지만 벌써 두 달째 안부도 한번 전하지를 않고 있으니, 망할 녀석?!
섬으로 간 내력
창에 서 있으면 우리는 꼭 섬에 있는 것같은 느낌을 받는다. 집은 만(灣)처럼 바다 속으로 쑤욱 들어간 해변의 갯가에 있어서 물이 들어올 때는 바로 창 아래 바닷 물결이 있다. 큰 파도가 칠 때 허공으로 치솟아 오른 물결이 하얗게 부서지며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 정경을 본 한 시인이 말하기를 “어쩌면, 은가루 속에 파묻혀 있는 것 같아요.” 라고 했다. 검은 명주실처럼 긴 머리를 풀어놓고 다니던 이집트 여인을 닮은 그 여류시인은 어머니의 친구 분이셨다. 내가 “이집트 아줌마!” 하고 부르면 시인 아줌마는 정말로 자기가 이집트 여인이나 되는 것처럼 이국적인 미소를 지으면서 “내가 정말로 이집트 여인을 닮았니?” 하고 물었다.
옆으로 보면 그림 속에 나오는 이집트 여인을 꼭 닮으셨어요. 그런데 이집트 사람들은 왜 모두 옆으로만 보고 있나요?
내가 궁금해서 물어 보았더니 아줌마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이라도 했다는 듯이
어머나, 듣고 보니 그렇구나. 아마도 그들에겐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밖에 없나 보다. 라고 대답했다. 하긴 이집트라는 말의 뜻이 세상이라는 뜻이라니까.
어머니는 여러 해 전에 이 집을 샀다. 어머니의 미래를 위해서였다. 나이가 더 많이 드신 후에 이곳으로 와서 편안하게 글을 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버린 이 갯마을은 한때 육십을 넘긴 노인들 몇 분만이 외롭게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바람이 부는 날 갯마을은 유령선처럼 황량하다 못해 음산하기까지 했는데, 그 중 가장 바다 가까이에 있는 낡은 집을 어머니는 사들였다. 평생을 물일을 하면서 살아오신 할머니 한 분이 살던 집이라 집은 형편없었다. 큰 도시에 있는 아들은 진작부터 할머니를 모셔가고 싶어했지만 어머니 같은 바다를 떠날 수 없었던 할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홀로 이곳에서 살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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