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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 말씀이 내 속에 들어온 날

이홍문 | 서울, 변호사       저는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등지에서 19년간 검사로 근무하였습니다. 특별수사 검사나 마약수사 검사로서 이름을 알리기도 하였고, 서울중앙지검에서 부장검사로 근무하기도 하였습니다. 세상에서 노력하여 많은 것을 성취하고 누려 보았지만 성경을 통하여 얻은 구원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남을 판단하는 지위에 있는 사람은 구원받기 어렵다고 하는데 저의 경우에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정신을 집중하여 강연 말씀을 듣고 여러 날 밤을 새워 성경을 읽기도 하였으며 구원이 무엇인지 궁금하여 많은 간증을 읽기도 하였지만 오랫동안 오리무중 속에서 헤매었던 것 같습니다.     저와 같이 고생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저의 경험을 가급적 자세히 써 보려고 합니다. 세상 권세나 영화와는 비교할 수 없는 큰 복을 허락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인생의 해답을 찾으려 노력했으나     저는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따라 장로교회에 다녔습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모두 기독교 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저는 스스로 성경 지식이 많다고 생각하였고, 행동이나 생활에 있어서도 같은 또래의 누구보다도 정결하고 신실하다고 자부하여 왔습니다. 남들과 주먹다짐 한번 해 본 적이 없고 다른 사람에게 욕설이나 마음 상하는 말조차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신앙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세상에는 창조주 하나님이 존재하시고, 그 아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인류에게 선하게 사는 본을 보이셨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여야 한다. 행동은 물론이고 마음속으로도 음욕을 품거나 나쁜 생각을 하지 않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예수님처럼 완전한 사랑을 이룰 수는 없고 선하게 살기 위하여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면 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의롭게 보아 주실 것이다’     언제나 선하게 살아 보려고 무던히 노력하였지만, 마음속에는 끊임없이 나쁜 생각이 들었고 겉으로는 거짓말을 반복하였습니다. 그럴 때면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 하나님께 용서를 빌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내 잊어 버리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곤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주일에 교회에 나갔을 때에만 의미가 있을 뿐, 일단 집에 돌아오면 공부나 장래 계획 등 현실적인 문제에 묻혀 버리다 보니 하나님이 저의 실생활에 끼어들 여지는 거의 없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자 성경의 내용이 비과학적이고 비이성적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6일간의 천지창조’, 온 세상을 뒤덮은 ‘노아의 홍수’, ‘홍해가 갈라진 기적’, ‘물 위를 걸어간 기적’, ‘물로 포도주를 만든 기적’ 등은 도저히 사실이라고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독단적이고 인간의 사정을 헤아려 주지 않는 것 같아서 반감이 들었습니다. 레위 지파로 하여금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 3천 명을 칼로 베도록 한 이야기나 (출 32:25-29) 토기장이의 비유 (롬 9:20-24) 등을 보면 특히 더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교회의 선생님들에게 상의하면, 선생님들은 그러한 기적들이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비판할 것이 아니라 그러한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 하는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결국 사실로 받아들이지 말고 신화나 설화로 보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그래, 지식인들은 성경을 선별적으로 받아들여야지 무지몽매한 사람들처럼 덮어놓고 전부 다 믿어서는 안돼.’하고 스스로 경계하곤 하였습니다.     이후 저는 대학입시에서 인생의 좌절을 겪었습니다. 고교 시절에 항상 우수한 성적을 보여 왔기 때문에 합격을 자신했었는데, 결과를 도저히 믿을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저보다 성적이 좋지 못했던 친구들이 합격한 것을 보니 더욱 참기 어려웠습니다. 세상이 불공평하게만 보이고 하나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비록 후기대학에 수석으로 합격하기는 하였지만 무너진 자존심을 회복할 수는 없었습니다. 법대에 진학하여 사법시험을 준비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재수할 생각을 접고 역전승하겠다는 생각으로 후기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하였습니다. 제게 있어서 대학 시절은 인생이 송두리째 부정적으로 뒤집어지는 어두운 시절이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칩거하여 그저 공부만 하였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종전의 긍정적인 생각도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내가 처한 현실은 참담하고 공허하기 짝이 없는데도 기독교는 ‘착하게 살아라. 착하게 살면 천국에 간다. 예수 믿으면 만사형통이다.’ 라는 한가한 타령뿐이었습니다. 기독교로는 내 문제를 하나도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러한 기독교가 미워지기 시작하였고 급기야는 그동안 마음속 깊이 눌러 놓았던 비판적인 생각들이 터져 나왔습니다.     교회 목사들의 거룩한 행실 뒤에는 왜 가식과 위선의 냄새가 나는지. 그들은 차별 없는 형제 사랑을 설교하면서도 왜 지위 있고 돈 많은 교인들에게 필요 이상의 관심과 친절을 보이는지. 교인들은 또 얼마나 가증스러운지! 교회에서는 천사처럼 사랑을 부르짖지만 과연 속마음도 그럴까? 교회에서는 많은 헌금을 보란 듯이 내면서도 왜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거지에게는 그렇게 인색한가. 헌금은 진심으로 이웃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선한 행동을 드러내기 위해서 하는 것인지. 목사는 헌금 기도를 하면서 왜 특별헌금을 한 사람들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는지. 이 땅의 수많은 교회는 막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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