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영 | 사업가
지난 호에 이어서, 다음(Daum) 카페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온라인 카페(http://cafe.daum.net/jesus330)에서 진행되었던 토론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 온라인 카페에서 ‘brother’, ‘상고’ 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분과 몇몇 분들이 ‘구원관으로 본 구원파의 이단성 여부’에 대한 토론을 제안했고, 이에 대한 답하는 글의 형태로 ‘나구원파’라는 닉네임을 쓰는 분이 아래 글을 카페에 게재합니다. 그런데 ‘나구원파’ 라니, 상당히 원색적인 닉네임을 쓰는 분입니다.
1) 먼저 구원론에 관한 내용인데, ‘구원파’의 구원론이라는 것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구원파’의 구원은 다른 것처럼 매도하다보니, 구원을 언급하는 사람은 ‘구원파’로 오해되는 일이 발생했다는 것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그 일례가 깨달음에 의한 구원이라는 내용이다.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골로새서 1:6)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이 바로 구원받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구원파’가 주장하는 깨달음이라는 것은 마치 별개의 현상처럼 매도하여, 영지주의라는 단어와 연결해 놓았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과 골로새 사람들은 모두 영지주의가 되고 만다. 사도 바울과 골로새 사람들이 영지주의라면 나도 영지주의가 기꺼이 되겠다.
‘깨달음’은 영어로 ‘know’(KJV), ‘understand’(RSV), ‘comprehend’(NRS)에 해당되는 말로, 특이한 말이 아니다. 기존의 교단에서 잘 쓰지 않는 용어라는 점을 이용하여 마치 ‘구원파’는 별개의 구원을 받는 것처럼 만든 것이다.
오히려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그대는 위의 말씀처럼 깨달음으로 구원받지 않았는가? 골로새서 1장 6절에 제시한 복음이 무엇인가?
복음은 고린도전서 15장 1절에서 3절에 명확하게 제시된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라는 이 내용을 믿는 것이다.
예수께서 우리 죄를 십자가에서 도말하여 내 죄가 없어졌다는 것을 깨닫는 것(아는 것, 이해하는 것)이다.
2) ‘구원파는 죄사함으로 인한 구원을 전한다.’ 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었다.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성경을 보고 한 말인가? 죄사함이 없는 구원이 존재하는가? 예수님이 왜 돌아가셨는가?
(중략)
토론자 중에 자기 죄가 예수님의 피로 구속 곧 죄사함(엡 1:7)을 받았다는 확신이 없는 사람이 정상적인 토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자격이 없다는 말이 아니므로 오해는 하지 말기를 바란다.
아직 여러분이 확실히 알기는 어렵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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