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5:12-42 1999. 3. 6 강연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뉘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 그림자라도 뉘게 덮일까 바라고 예루살렘 근읍 허다한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가로되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저희가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와서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 오라 하니 관속들이 가서 옥에서 사도들을 보지 못하고 돌아와 말하여 가로되 우리가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킨 사람들이 문에 섰으되 문을 열고 본즉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더이다 하니 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이 이 말을 듣고 의혹하여 이 일이 어찌 될까 하더니 사람이 와서 고하되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 하니 성전 맡은 자가 관속들과 같이 가서 저희를 잡아 왔으나 강제로 못함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함이러라 저희를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가로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저희가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 하고자 할새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교법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 것을 조심하라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자랑하매 사람이 약 사백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좇던 사람이 다 흩어져 없어졌고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좇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좇던 사람이 다 흩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저희가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사도행전 5:12-42)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사도행전 5장 12절부터 16절까지의 내용을 보면 사도들에 의해 많은 병자들의 병이 낫는 등 하나님의 능력이 크게 나타났습니다. 마치 큰 잔치가 벌어진 듯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먼저 12절부터 보겠습니다.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이 말씀은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요 13:34) 하고 부탁하신 말씀이 이행되고 있는 모습입니다. 예수께서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 13:35) 고 말씀하신 것처럼 새 계명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숫자가 날로 불어났고, 그 사람들이 한 집에 다 모일 수가 없어서 솔로몬 행각에서 모였습니다. 이들과 함께 생활하던 사람 중에 아나니아와 삽비라 두 사람이 불의의 일로 죽은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더욱 굳게 하나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성령의 역사는 계속 더 힘차게 나타났습니다.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사도행전 5:13)
믿는 이들과 한데 어울릴 수 없는 사람들은 감히 그들과 상종할 수 없었습니다. 그 무리가 힘차게 움직이니 겁이 나서 동참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들의 움직임은 이때로부터 1400년 전에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고난과 역경을 겪고 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홍해를 건너 광야에 들어가던 때의 움직임과 같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새로 선택된 무리였습니다. 유대 민족의 조상들이 모세의 인도를 따라 애굽에서 나왔듯이 이때도 사도들에게 나타난 성령의 능력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왔고, 또 세상에 속해 있던 마음들이 예수께로 옮겨지고 있었습니다. 그 성령의 움직임에 함께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사도들이 하는 일이 옳다며 그 공덕을 인정하고 칭송하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사도행전 5:14)
큰 무리가 주를 믿고 주께로 나아왔고, 많은 사람들이 주의 은혜에 동참했습니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을 떠나 홍해를 건너서 광야에서 새 출발을 했습니다. 애굽을 탈출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법을 순종하기 위해서 광야로 들어간 것입니다. 이제 신약 시대에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도 그와 같은 경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들은 분명히 세상과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믿음은 보통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믿음과는 차이가 큽니다. 사람들은 예수를 믿느냐고 물으면 ‘믿습니다.’라고 대답은 참 잘합니다. 그러나 믿는다는 것은 경계가 확실한 것입니다. 확실히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판가름이 나기 때문에, 믿지 않는 사람이 믿는 것처럼 행동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1) 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아무나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 믿는 사람처럼 행동했다고 천국에 갈 수는 없습니다.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선이 있기 때문입니다.
12절의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라는 말씀과, 14절의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하는 말씀을 보면, 전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믿고 예수님과 함께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사실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한마음이 되었다’는 말과 ‘믿는 사람들이 함께 주께로 나왔다’는 말은 우리가 쉽게 지나치고 넘어갈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한 이후로 벌써 2천 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가면 갈수록 믿음의 종류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눅 18:8 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우리 모두는 한 주님을 믿고 있습니다. 또 한 성령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그 성령으로 인해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정통이라고 주장하는 교파들을 비롯해 기독교 간판을 내건 많은 교파에서도 믿음은 하나라고 가르치고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엡 4:4-5) 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는 그 믿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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