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창순 | 서울 (사업가)
신학대학에 입학하기까지
중학교 1학년까지 나는, 내 개인 신상과 가족사항의 종교 란에 항상 ‘유교’ 라고 적었다. 우리 집안에서는 제사를 지냈기 때문에, 유교가 나와 우리 가족의 종교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성실하고 예의 바르고 착하다는 말을 자주 듣고 자란 도덕적인 모범생이었다.
중학교 2학년 봄, 처음으로 교회에 나갔다. 마침 부활절 행사 주간이었다. 목사님은 설교에서 ‘기독교에서 큰 명절은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이다. 부활절의 메시지는 기독교 최대의 메시지이다.’라고 하셨다. 그 설교를 들으면서 나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로 느껴졌다. 시간적으로는 거의 2천 년 전에 일어난 일이며, 장소적으로는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중동에서 벌어진 사건인데 어떻게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우리 집안에서 증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의 제사를 지내는 것처럼 기독교의 명절에 교조의 돌아가신 날을 잊지 않고 기념하는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편했다. 그러나 이것이 기독교 최대의 메시지라고 하니, 지금은 교회에 다닌 지 얼마 안 되어 이해하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하며 일단은 덮어 두었다.
교회에 나가자 나는 곧 열성 교인이 되었다. 각종 집회에 출석할 뿐만 아니라 새벽 기도회에도 참석하였다. 그리고 성경은 매일 의무적으로 읽었다. 마태복음 1장 1절부터 요한계시록 마지막 구절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정독하였다. 특히 마태복음 5장에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는 말씀에, 나는 마음의 고통이 많았다. 그래서 등하교 길에서 여학생을 보면 기도를 하곤 했다. ‘주님, 저는 마음에 간음죄를 지었습니다. 이 죄를 용서해 주세요.’ 이렇게 매번 기도를 하였다. 그렇게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내 마음의 고통은 더욱 깊어만 갔다.
교회에서는 일 년에 한 번 이상 부흥회를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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