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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 양심의 자유함을 주신 예수님

박충서 | 치과의, 기독교복음침례회 총회장       가족 현악 사중주단을 꿈꾸던 학생 시절     나는 유교 사상이 가득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한국 전쟁이 발발했는데, 청주에서 초등학교 3학년까지 다니다가 대전으로 전학을 갔다. 청주에서는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었다. 그 시절에는 책가방이 없어서 누구나 넓은 보자기로 책을 싸서 메고 다녔는데, 그 책 보자기를 학교에서나 가끔 펼쳐보았을 뿐 집에서는 펴보지도 않았다. 집에 돌아오면 그대로 방에 던져 놓고는 밖에 나가 놀기에 바빴다. 당연히 성적은 좋지 않았고, 반 아이들이 70명이면 70등, 80명이면 80등이 내 차지였다. 대전으로 전학 온 후, 선생님께서 내 성적표를 보시고 야릇한 표정을 지으셨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웠던 것은 청주에서는 숙제 없이 지냈는데 대전에서는 숙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청주에서는 방학 숙제도 없었다. 내게는 이 숙제가 생소했고,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자연히 책을 보았고 선생님의 말씀도 듣게 되었다. 수개월에 한 번씩 시험을 보았는데 시험을 볼 때마다 15등 내지 20등씩 성적이 올랐고, 5학년이 되었을 때는 상위권에 속해 있었다. 중학교에 진학해서는 성적순으로 반장 후보에까지 올랐으나, 반장은 되지 않았다. 그때는 중학교 합격자 발표가 나고도 1개월 정도 더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초등학교에서의 마지막 수업에서 담임선생님은 내 이야기만 하셨다. 지금도 나는 이 선생님의 존함만은 기억하고 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과목은 체육과 국어였고, 좋아하는 과목은 음악과 수학이었다. 체육 수업이 있는 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비오는 소리가 들리면 기분이 무척 좋았다. 이런 날은 체육 수업을 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하루 종일 신이 났다.(칠순을 바라보는 지금의 나이에 내가 교회를 알고 이제 와서 유도와 태권도를 한다는 것은, 내가 나를 봐도 놀랍고 신기한 일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하루는 점심시간에 학교 방송실에서 음악을 들려 주었는데, 난생 처음 듣는 그 음악이 무척 경쾌하고 힘 있고 아름다운지라, 운동장에서 놀던 것도 잊고 그대로 서서 듣고 있었다. 음악이 끝나고 나니 슈베르트의 군대 행진곡이라는 설명이 흘러나왔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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