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2009. 8. 22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골로새서 2:2-3)
다윗과 솔로몬의 역사 속에 드러나는 예수님의 그림자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내게 행한 일 곧 이스라엘 군대의 두 장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예델의 아들 아마사에게 행한 일을 네가 알거니와 저가 저희를 죽여 태평 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전쟁의 피로 자기의 허리에 띤 띠와 발에 신은 신에 묻혔으니 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 백발로 평안히 음부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 마땅히 길르앗 바르실래의 아들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저희로 네 상에서 먹는 자 중에 참예하게 하라 내가 네 형 압살롬의 낯을 피하여 도망할 때에 저희가 내게 나아왔었느니라 바후림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너와 함께 있나니 저는 내가 마하나임으로 갈 때에 독한 말로 나를 저주하였느니라 그러나 저가 요단에 내려와서 나를 영접하기로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기를 내가 칼로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였노라 그러나 저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지어다 너는 지혜 있는 사람인즉 저에게 행할 일을 알지니 그 백발의 피를 흘려 저로 음부에 내려가게 하라 다윗이 그 열조와 함께 누워 자서 다윗 성에 장사되니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사십 년이라 헤브론에서 칠 년을 치리하였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을 치리하였더라 솔로몬이 그 아비 다윗의 위에 앉으니 그 나라가 심히 견고하니라 (열왕기상 2:5-12)
우리는 먼저, 다윗 왕이 늙어 죽음을 바라보고 있는 상태에서 한 사건이 일어나는데, 그 사건을 성경 전체를 통해 역사의 대장정 속에서 살펴보아야 하며, 또 이 땅 위에서 살아가는 동안 자신을 그러한 일에 비추어 보아야 할 필요가 있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아브넬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고, 왕이 되려고 했던 아도니야와 그를 따르던 무리들이 어떠한 결말을 맞이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번에는 열왕기상 1, 2장 당시의 상황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아마사와 바르실래, 시므이가 다윗이 활동하던 시대에 다윗에게 어떠한 일을 행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이러한 성경 내용을 대할 때 우리가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잘못 읽으면 이 내용이 어떤 개인을 지칭한다거나 특정 부류의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개인이 교훈을 받을 수 있는 내용이기는 합니다만, 먼저는 예수님과 이들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세상에 태어나셨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우리는 여기에 내 개인의 신앙을 먼저 갖다 댑니다. 물론 그렇게 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고난을 받고 돌아가셨고 그 죽음 안에 나도 함께 장사되었으며,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심으로 인해, 그것을 믿는 내 영혼도 예수와 함께 회복되고 살아나서 예수님 품에 안겨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영혼이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과 함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에베소서, 골로새서 같은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범위를 넓혀서 생각해 봅시다. 예수께서는 언젠가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는 그 기간이 끝나면,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계 1:7) 라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처럼 실제로 이 땅에 다시 오셔서 한 나라를 건설하실 것입니다. 그때 ‘천년 왕국’이라고 하는 예수님의 왕국이 이 땅에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전체 역사 속에 나타나시는 예수님을 생각해 보면, 우리는 다시 오시는 그분의 모습이 처음 이 땅에 오셨을 때와는 아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 민족의 역사 속에 나타나셔서 그 속에서 사신 예수님의 모습은, 인간의 눈으로 보면 볼품없는 한 청년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고난 받는 예수님의 모습을 다윗에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의 모습을 통해서 왕 중 왕으로 영광 중에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예수께서 세상에 오셔서 고난을 받으시고 돌아가신 뒤 언젠가 다시 오실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어떠한 고난을 받을 것인지, 예수님을 처형한 유대 민족이 어떠한 일을 겪을 것인지, 예수께서 이 땅에 재림하시기 바로 직전에 있을 7년 환난 기간 동안 유대 민족이 어떤 일들을 겪을 것인지가 역사 속에, 다윗이 살아가며 겪은 많은 일들 속에 숨어 있습니다. 그리고 심판주로 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아버지 다윗의 왕위를 이어 이스라엘 민족의 왕이 되는 솔로몬이 아브넬, 아마사, 바르실래, 시므이와 같은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 그리고 그가 하나님께 구한 지혜를 선물로 받아 재판하는 모습에서 드러납니다.
개인이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큰 계획
요압이 아브넬과 아마사에게 행했던 일을 생각해 봅시다. 먼저는 교회 시대 속에서 교제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 나의 모습을 요압에 비추어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제 역사적인 관점에서 요압과 여러 인물들과의 사건들을 살펴보겠습니다.
교회의 역사를 생각할 때, 우리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유 1:4) 는 말씀과 누가복음 19장의 종들에게 한 므나씩 맡기고 떠난 주인이 왕위를 받고 돌아와서 그 종들에게 무엇을 남겼는지를 묻는 이야기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한 내용들을 통해 우리는 “서로 사랑하라” (요 13:34) 는 예수님의 명령대로,
“한 새 사람을 지어” (엡 2:15),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 (골 2:19) 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 교제가 이루어져 가야 함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자신의 급한 성격과 문제점들을 억누르지 못하고 밖으로 표출함으로써 교제가 이루어져 나가는 데에 방해가 되는 일들을 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어느 한 개인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성경 말씀을 처음 깨달았을 때 우리에게 주어진, 살아 있는 양심이 있습니다. 성경 말씀으로 인해 확실하게 한 번 거듭난 경험이 있는 분들은 양심이 칼날같이 일어나 구원받기 전보다 훨씬 더 죄에 민감해지고, 성경을 읽지 않으면 답답해지는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아실 것입니다. 물론 육신적인 성격과 고집이 그대로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양심이 살아 있기에 복음을 전하라는 성경의 명령에 따라 복음을 위해 살아가려는 노력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우리 마음에는 순종하려는 마음과 불순종하려는 마음이 공존합니다. 그래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 7:24) 한 사도 바울의 말씀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모습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요압의 삶에서도 우리는 그러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요압은 아무개 형제와 닮았다.’, ‘나를 괴롭히는 직장 상사와 닮았다.’ 하는 얄팍한 생각으로 그의 행동을 해석할 것이 아닙니다. 물론 스스로를 돌아보며 ‘마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라고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는 다윗과 솔로몬 앞의 요압을 두고, 과연 나는 어떠한 모습으로 예수님 앞에 서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이 성경을 보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고 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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