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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 우리를 비방하는 자들의 주장에 대한 우리의 변(辯)

현대종교 10월호에 실린 정동섭의 기고문 ‘구원파는 반율법적이고 영지주의적 사이비기독교 집단이다’를 읽고 나서     율법 폐기론자, 종말 위기의식 고취, 예배 형식에 대한 반론     사회자 이재옥 - 의학박사     토론자 박충서 - 의사, 기독교복음침례회 총회장 이용화 - 사업가, 기독교복음침례회 평신도회장 김성국 - 더편한몸의원 원장  |  최숙희 - <글소리> 발행인 이승기 - <글소리> 연구위원  |  이태종 - <글소리> 총무팀장     ※ 토론 중의 강연 및 강해의 인용은 정동섭씨가 문제를 삼고 왜곡 비방하는 유병언 회장의 강연을 인용한다.     이재옥    정동섭 씨가 구원파에서는 구원받은 날짜를 지나치게 강조한다고 비난하는데,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을 들어 보겠습니다.       김성국    구원받은 날짜를 일부러 강조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구원받기 전과 후가 무척 분명하게 구분되기 때문에 그 날짜를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사고를 당해서 잊을 수도 있고, 날짜를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구원받은 순간이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최숙희    구원파에서는 구원받은 날짜를 강조한다는 비판에 대해 로마서 강해를 살펴보면 명확합니다.       이 성경에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들 집이 광주든지 대전이든지 어디든지 여러분들 있는 곳은 하나님 앞에 진짜 감사할 자리입니다, 어디서 복음을 알았든지. 우리가 아는 이 복음은 절대 확실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아는 이 복음은 확실히 믿어진 것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믿어진 것인지 대강 알 것입니다. 날짜는 혹 잊어버렸을지라도, 몰랐을지라도. 살아오는 동안 언제 믿어졌는지, 어디 살 때 믿어졌다 하는 것은 대강 알 것입니다.       사회    또 정동섭 씨는 구원파 사람들은 율법에서 해방되었으니 회개할 필요 없이 은혜를 누리자는 율법 폐기론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최숙희    1999년에 있었던 국내외 성경탐구모임의 강연 가운데 다음과 같이 회개에 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린 적이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인용해 보겠습니다.       예수를 믿은 후에도 크고 작은 경중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죄는 다 짓습니다. 그러나 우리 영이 우리 속에 살기 때문에 우리는 죄에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영이 내 속에 오셔서 내 영과 함께 내 죽을 육체에 함께 머물러 계시는 것입니다. 내 영이 새롭게 되었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전에 죄 속에 살던 때와는 다르게, 하나님의 자녀로 잘못된 것에 대해서 자주 자주 하나님 앞에 아뢰고 또 자백해야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삶 중의 일부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취급되는 죄입니다. 이러한 뉘우침과 자백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확신을 갖지 않은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는 생활의 반복되는 씻음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해야 할 일입니다. 확실히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확신이 없는 사람은 그것 반복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종교적인 습관을 배운 것에 불과합니다. 그 전에 완전한 회개가 한 번 필요합니다. 탕자가 돌아섰듯이, 자기 아버지 집을 찾아왔듯이 완전히 돌아서는 회개가 한 번 필요하고, 그 다음에 생활에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일에 쓰이기 위해서, 혹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의 권속으로, 식구로서 하는 자백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한 군데 더 인용해 보겠습니다. 일곱 번째 로마서 강해에는 예수께서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눈으로 범죄한 것이나 행동으로 옮긴 범죄나 원인은 모두 마음에 있다는 것을 율법은 말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마 5:17)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율법으로 죄로 깨닫고, 율법으로 죄인이라 하는 것을 알고, 율법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쟁취했다면 이 율법이 우리에게 교훈이 됩니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한 것이라는 말씀대로 우리는 이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가르쳐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나라 헌법을 다 모릅니다. 그러나 법의 질서를 어기지 않고 정확하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이라는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성도를 사랑하는 것은 율법을 능가하는 힘이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힘을 주신 것입니다.       즉 율법을 폐하는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박충서    회개는 크게 두 가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생명을 얻게 하는 회개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고넬료라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후 이방인들에게 성령이 내려 그들이 구원받는 모습이 사도행전 11장에 나타납니다. 18절에는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러한 생명을 얻게 하는 회개는 단 한 번만 있는 것입니다. 정동섭 씨가 우리를 비방하는 내용 중에 ‘회개를 계속하는 것은 구원받지 못한 증거’라고 우리가 주장한다고 하는데, ‘생명을 얻게 하는 회개’는 분명히 한 번입니다.     회개에 대한 또 다른 의미는, 자신의 어떤 잘못된 행동을 돌이키는, ‘자백’ 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회개가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일 1:9) 라는 말씀과 같은, 자백을 말하는 회개입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죄를 짓지 않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것에 대한 자백이 있어야 되고, 그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이렇게 회개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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