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2013.08> 아도니야와 요압을 처리한 솔로몬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2009. 8. 15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한복음 5:39)     성경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우리는 먼저 열왕기상 1장과 2장의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열왕기상 2장의 기록에 나타나는 몇몇 인물들에 대해서도 살펴보았습니다. 열왕기상 1, 2장의 내용은 어떤 소설이나 책의 내용보다 훨씬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저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쓴 <악령>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책의 특징은 내용 속에 해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속에서 어떤 답을 끄집어내기 위해 저는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해야 했습니다. 읽고 난 뒤 단순하게 ‘아, 그렇구나.’ 하고 생각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작가는 왜 이런 책을 썼으며 작가가 살고 있던 나라의 정치적, 사상적 배경들이 어떠했기에 이런 책을 썼을지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었습니다. 읽고 난 후에도 무언가 계속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점이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책 내용을 새롭게 해석했다거나 그 속에서 어떤 진리를 찾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사람이 기록한 책으로서 흥미를 느꼈다는 말입니다.     수백 장에 달하는 그 책을 읽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반면 열왕기상 1장과 2장, 이 두 장의 내용은 매우 짧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자기 지식을 모두 털어내어 쓴 책을 읽고 제 마음속에 든 생각과, 짧은 이 성경 두 장을 읽은 후 제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또 생활하면서 깨닫는 생각은 그 비중의 차이가 매우 컸습니다. 그 책을 통해 갖게 된 생각들과 지식, 내게 안겨준 감동과 즐거움, 잠깐의 희열은 성경 말씀이 나에게 가져다주는 생각의 폭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한 글자 한 글자가 우리에게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어떤 지식에 관해 쓴 책이나 연구하여 발표해 놓은 내용들을 찾아보는 일에 흥미가 있습니다. 그런 내용들을 접하면 단순하게 읽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유심히 살펴봅니다. 역사 속의 사건이나 좋게든 나쁘게든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들이 살아간 이야기들을 접할 때도, 그 내용을 글로 읽으면서 그들이 살아가면서 행했던 일들과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끼쳤던 영향 등을 나름대로 깊이 생각해 보고, 그것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나와 또 내가 가진 생각과 어떠한 관계가 있을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들은 그 내용이 아무리 내게 도움이 되고 내 생각에 영향을 준다 하더라도 지금으로부터 2천5백 년에서 3천 년 전에 기록된 이 짧은 성경 내용이 전해 주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합니다.     저는 열왕기상 1, 2장을 여러 번 읽었고 앞뒤 내용을 살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내용은 보면 볼수록 점점 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무엘서, 열왕기서, 역대기서의 내용들을 읽으면서 역사서나 역사소설, 또는 대하드라마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대하면서, 성경을 대하는 우리 태도와 성경을 바라보는 내 생각의 중심에 무엇을 두어야 하는지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스스로의 생각 속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성경 말씀이 자신이나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럴 때마다 제 마음을 스스로 채찍질합니다.     일 년 동안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는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습니다. 달도 자기 혼자 알아서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를 중심으로 돕니다. 성경을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고 그 내용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해석도 합니다. 또 그 말씀에 내 생활을 비추어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먼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 5:39) 하는 예수님의 말씀, 그 한마디가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살아가신 삶,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내용과 가깝지 않은 것처럼 여겨지는 성경 말씀을 읽을 때는 성경이 예수님을 증거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이 말씀은 이런 뜻인 것 같고 저 말씀은 저런 뜻인 것 같다.’ 하면서 나름대로 상상의 날개를 펼칩니다. 그러나 내 감정과 생각을 통해 성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라고 하신 그 말씀을 통해 구약 성경을 바라보면 내 마음속에 서려 있는 감정이나 생각들이 깨집니다. 그것이 성경의 힘입니다.     성경에는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고후 10:5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하게 내가 성경을 보다가 무언가 갑자기 깨달아서 하나님 앞에 즐거워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앞에서 내 마음이 울컥하거나 환하게 밝아지는 그러한 기분이나 느낌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성경 전체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히 4:12) 하는 말씀에 비추어 살펴보아야 합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많은 내용들은 나의 개인적인 감정이나 생각들을 훨씬 뛰어넘는 위치에서 우리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서를 읽으면서 등장인물들의 위대한 업적이나 그들이 한 말, 또 그들이 당하는 일들을 보며 동정심을 갖기도 하고, 동경하기도 하고, 통쾌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많은 감정들이 엎치락뒤치락합니다. 성경도 그렇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감정을 무시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먼저는 냉정하게, 또 말씀에 준한 생각을 가지고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한복음 5:39)       성경은 아주 간단명료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성경”은 구약 성경입니다. 이때 신약 성경은 아직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에게 신구약 성경 전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성경이 곧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짧지만, 우리가 일평생 성경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과 내게 일어나는 모든 생각을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도록 붙잡아 줍니다.     우리는 성경을 대할 때 나름대로 해석을 합니다. 또 각자의 감정과 복잡한 생각들을 가지고 성경을 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씀을 따라가지 않으면 예수께서 명령하신 “서로 사랑하라” (요 13:34) 는 명령, 또 ‘각 민족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마 24:14 참조)는 말씀을 교제 안에서 이루면서 따라갈 수 없습니다.
정회원으로 가입하시면 전체기사와 사진(동영상)을 보실수 있습니다.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



* 온라인 쇼핑몰

글소리 PDF 웹북 펼쳐보기


* PC 버전 홈페이지 전환



Copyright (c) 2025 (주)많은물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