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강해 중에서 2006년 1월 7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빌립보서는 전체 4장까지의 내용이 상당히 짧고 단조롭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장이 많고 절수가 많은 다른 성경보다 부족한 것은 아닙니다. 짧지만 상당히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가 시작될 때, 사도 바울은 어떤 계획을 세우고 빌립보 지역에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 빌립보 교회는 부한 사람들이 모여 시작된 것도 아닙니다. 사도 바울 일행이 기도처가 있는가 싶어 강가에 갔다가 여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자주 장사하는 여인의 집에 전도하여 그 식구들까지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또 사도들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간수와 그의 가족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행 16:31) 하신 말씀이 인류 역사상 처음 등장했습니다.
사도행전에는 재미있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이때 16장 31절의 말씀도 처음 나왔지만, 또 다른 말씀도 있습니다. 이전에 유대 민족 전체에게 하신 말씀으로, 다른 민족들은 이해하기 힘들지만 성경을 좀 배웠다면 유대인이 아니라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전 세계에 처음 전해진 이 말은 일평생 물고기나 잡고 그물질이나 하던 사람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유대 지도자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 즉 굉장히 종교적이고 율법적인 사람들 앞에서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행 4:12) 고 말한 것입니다. 구원에 관해서 아주 중요한 이야기가 발표되었습니다. 후에 이 말씀은 이방인들에게도 전해졌습니다.
한편,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은 빌립보 교회가 시작될 때 사도 바울을 통해 이방인에게 처음 발표되었습니다.
간수와 그의 가족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게 된 그 다음날, 관리들이 아전을 보내어 바울과 실라를 내보내려고 했을 때 사도 바울이 한 말이 있습니다.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우리를 내어 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저희가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사도행전 16:37)
왜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않고 처벌했다가 이제야 뒷문으로 나가라 하느냐고 항의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로마 사람이라고 당당하게 주장했습니다. 로마 시민권자였기 때문입니다. 참 이상한 것은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자신에게 유익하던 것을 해로 여겼다고 했습니다. (빌 3:7 참조) 그렇게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 사람인데 (빌 3:8 참조), 빌립보에서는 로마 시민권을 한번 써먹은 것입니다.
“왜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치 않고 때리고 옥에 가두었느냐?”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으로서 자신의 신분을 밝힌 것입니다. 그러자 관리들은 겁이 나서 정식으로 사과하고 내보냈습니다. 감옥에서 나온 사도들은 이 지역에서 복음이 처음 시작된 집을 찾아갔습니다. 자주 물감 장사를 하는 루디아라는 여인의 집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나이가 들어 로마의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가 바로 빌립보서입니다. 로마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쓴 편지의 주요 내용은 “기뻐하라”는 부탁입니다.
빌립보서 1장에는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5-6절) 고 되어 있습니다. 세상에는 잔칫날이 많고 명절도 많고, 좋은 날들이 많지만 우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이라는 그날까지 이루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 중에 이런 찬송가가 있습니다.
그 영광의 날에 주 다시 오셔서천국으로 데려가리주 항상 계시네 내 맘속에 (합동찬송가 417장)
바울은 그 영광의 날, 그리스도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자세를 발표했습니다. 빌립보 서신은 짧은 내용이지만, 시작과 끝이 아주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목표를 바라보고 가는 사람들이 목표 지점에 도착할 때까지 어떻게 살아야 된다는 것을 아주 정확하게 표현해 놓았습니다.
어떤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어떤 시합에서 메달을 따서 어느 위치에 이르는 것보다 메달을 획득하기까지 노력하는 과정, 그 훈련이 자기 몸에 익숙해지는 과정이 중요한 것입니다. 운 좋게 자기보다 실력이 낮은 사람과 겨루어 높은 순위에 오를 수도 있고, 혹은 더 낮은 순위로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살면서 익힌 운동이라든지 학문, 예술과 같은 이런 모든 것이 어떤 목표점에 도달하기까지 자기 몸에 익숙해지는 과정입니다.
이 빌립보서에도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1:5-6),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2:13) 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 안에서 행하는 분이 계십니다. 아무리 운동을 잘하는 사람이라도 정신이 온전치 않으면 시합은커녕 제대로 활동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렇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 역시 종교적인 행위를 몸으로 배워 종교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 하신 말씀대로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하심이 개인에게나 교회에게나, 즉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가장 필요한 힘이 되어야 합니다. 이 빌립보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힘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전진해야 한다는 것을 가장 잘 표현하고 또 강조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를 읽다 보면 ‘아, 소홀해서는 안되는 문제구나.’ 하고 알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5) 라는 말씀에서 ‘이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그 마음을 품으라고 되어 있으니 그대로 품어야 합니다. ‘아, 그리스도는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고, 그리스도의 마음은 이러이러하니까 나도 그 마음을 가져야겠다.’ 하는 식이나, 어느 학교에 들어가서 배지(badge) 하나 얻어 가슴에 다는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될 마음 자세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교회라는 집단은 신교, 구교 등 여러 종파의 모습으로 2천 년간 이어져 왔습니다. 그렇게 이어진 이 기독교라는 거대한 단체는 훗날 심판 때 다 걸러집니다. 이 빌립보서의 기록에 반(反)하는 것, 대치되는 것은 다 걸러지게 됩니다. 가는 망으로 된 체로 치면 필요한 고운 가루는 밑으로 빠지고 찌꺼기는 위에 걸리는 것처럼, 전 세계에 퍼져 있는 기독교라는 단체,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과의 교제를 빙자하는 모든 단체나 개인이 빌립보서가 강조하고 있는 내용의 망에 걸려 그릇에 담기지 못하고 찌꺼기로 남게 되면 엄청난 심판의 대상, 즉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잘 알지 못합니다. 성경을 하나의 종교 경전으로만 생각하고 어떤 신학 이론이나 전개하는 글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문제는 기독교의 큰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빌립보서는 그리스도인들의 실제 생활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먼저 세상을 살았던 선배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고 살았는가 하는 것은 성경 없이는 알 수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빌립보서 1:15)
이 말씀처럼 세상 기독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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