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순
페르시아 아하수에로 왕 시절, 수산 성에 살던 한 유대인이 있었다. 바로 에스더서에서 왕후 에스더의 친척으로 등장하는 모르드개이다.
도성 수산에 한 유다인이 있으니 이름은 모르드개라 저는 베냐민 자손이니, 기스의 증손이요 시므이의 손자요 야일의 아들이라 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 여고냐와 백성을 사로잡아 갈 때에 모르드개도 함께 사로잡혔더라 (에스더 2:5-6)
이 기록에 의하면, 모르드개는 기원전 597년, 유다 왕 여고냐와 신복과 방백들과 백성들, 목공들과 철공들이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바벨론 땅으로 사로잡혀 올 때 함께 온 사람이었다. (왕하 24:10-16, 렘 24:1 참조) 에스더서에 나오는 아하수에로 왕이 왕위에 오른 때를 기원전 485년경으로 추정한다면, 에스더서에 전개되는 사건들은 모르드개가 잡혀온 때로부터 약 112년이 흐른 후가 된다. 이때는 이미 바벨론 제국이 무너지고 페르시아 제국이 바벨론 땅을 다스리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렇다면 당시 모르드개의 나이는 어느 정도였을까? 많은 성경학자들은 기원전 597년 바벨론 땅으로 잡혀왔던 사람은 모르드개가 아니라, 그의 증조부인 기스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에스더 2장 6절에 “모르드개도 함께 사로잡혔더라(Who had been carried away from Jerusalem)”는 구절은 실지 그의 증조부인 기스에 관한 언급이라고 할 수 있는데, 뉴킹제임스 영어 성경에는 아예 ‘기스(Kish)’가 바벨론 땅으로 사로잡혀 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설이 타당하다고 본다면, 모르드개는 포로로 잡혀온 유대인의 후손이었다. 어쨌든 모르드개와 그의 사촌 여동생인 에스더와의 나이 차는 상당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가 에스더를 “자기의 딸같이 양육”했다는 에스더서의 기록이 이를 뒷받침한다. (2:15 참조)
에스더서에는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아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혹 그는 대궐 문지기는 아니었을까? 실제로 그가 대궐 문지기였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성경학자들도 있다. 그런 그가 어떻게 해서 왕에 버금가는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을까, 실로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모르드개와는 완전히 대조적인 한 인물을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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