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2007. 4. 14.교제를 통해 발견한 것최근에 저는 평소 어렴풋이 알고는 있지만 그렇게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던, 우리가 어떠한 마음가짐과 생각을 가지고 무엇을 바라보면서 세상을 살 것인가 하는 것을 성경을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아주 조용한 시간을 보냈는데, 내가 하고 싶은 일들과 하기 싫은 일들, 내가 생각해야 할 일들과 생각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펼쳐 놓고 마음속으로 참 많은 싸움을 했습니다. 얼마 전 사는 곳을 옮기게 되었는데 ‘이것도 하나님의 뜻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살면서 그런 생각을 해 보셨을 것입니다. 어떤 때는 도무지 나에게 일어나서는 안 될 것 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저는 지난 몇 달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을 하면서 ‘제발 이제는 이런 일을 그만했으면 좋겠다. 이제는 나를 좀 쉬게 해 주셨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까지 해 보았습니다. 우선, 몸에 대해 이야기해 보면 건강 상태가 계속 나빠졌습니다. 비교적 젊은 나이임에도 기력이 떨어지고 몸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큰 병은 없는데 노력해도 회복되지 않고 오히려 더 힘들어지기만 했습니다. 그런 제가 건강에 대한 강연을 하기도 하니 스스로가 위선자로 느껴질 때가 있었습니다.저는 지금까지 교제 속에서 여러 일들을 해 왔습니다만, 참 어려울 때가 많았습니다. 과거에도 여러 차례 큰 어려움을 겪었는데 왜 이렇게 연이어 힘든 일들이 닥치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가족 중에 아픈 사람도 있습니다. 마치 욥의 이야기처럼, 한 가지 일을 겨우 감당하고 나면 또 다른 어려움이 이어졌습니다. ‘이제는 그만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다시 어려움이 닥치고 또 닥치는 시간들을 한동안 계속 보내 왔던 것입니다.그런데 얼마 전에 멀리서 온 여러 형제자매들과 오랜만에 만나 함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밤늦게까지 미국 LA 모임 장소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과정에서 제 마음에 큰 위로를 얻었습니다. 이것이 단지 저 개인의 문제가 아니며, 많은 형제자매들이 저와 비슷한 상황을 겪어 왔고 비슷한 마음을 가져 왔을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문제가 채 해결되기도 전에 또 다른 어려움이 닥치는 일들이 반복되어 왔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그렇게 멀리서 온 형제자매들과 긴 이야기를 나눈 후, 제 마음속에 ‘이것은 분명히 나에게 필요했던 시간이고 경험이었구나. 이런 어려움들을 한꺼번에 겪지 않았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함께 교제하며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개인에게 찾아오는 이 작은 어려움조차 제대로 감당하지 못해 마음이 상하고 흔들리면서 수많은 형제자매들이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많은 일들에 대해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습니다.그러면서 저는 개인의 고통과 우리가 함께 겪는 어려움이 과연 얼마나 다를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힘든 시기를 지날 때 흔히 ‘왜 나만 이렇게 힘들까?’ 하고 생각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비슷한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 시절에는 작은 일도 인생 전체가 걸린 큰일처럼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같은 일도 달리 보이게 됩니다. 나이가 들면서는 자신에게 닥친 일들을 스스로 돌아보고 평가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은 다시 중심을 잡고 길을 가지만, 어떤 사람은 자기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자신과의 싸움 속에 주저앉기도 한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해 봅니다.개인에게나 우리에게 닥쳐오는 일 중에는 말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안 좋은 일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 것이 꼭 개인의 문제라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모습들 그리고 내 머릿속을 거쳐 가는 많은 생각들 속에는, 분명 내 문제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안고 있는 문제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그러한 문제들에 대해 의논하면서 해결해 나갈 때, 각 개인의 문제들이 하나씩 하나씩 뒤로 물러난다고 생각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당연히 복음의 사명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저는 요즘 아브라함에 대한 성경 말씀을 읽어 가면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의 삶이라는 것,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나누는 교제라는 것이 아브라함의 삶의 모습 속에 숨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을 보면 때로는 ‘아이고, 《삼국지》 같았으면 지금쯤 칼을 꺼내서 마음에 안 드는 사람 목이라도 쳤을 텐데, 왜 답답하게 이러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 내용은 내 생각과는 전혀 상관없이 큰 강물처럼 흘러갑니다. 그 안에서 아무리 많은 사람이 헤엄을 치고 노를 저어도 큰 물줄기는 바뀌지 않고 유유히 흐르는 것처럼, 성경 말씀도 그렇게 흘러갑니다.그런데 성경에 하나님께서는 감당할 수 있는 시험 외에는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답이 나와 있습니다. 고전 10:13 참조 때로는 내 인생이 억울하고, 세상이 불공평해 보이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해해 주지 못하는 것에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 모습을 교회라고 하는 그리스도의 몸, 그리고 작게는 내가 몸담고 함께 교제하고 있는 형제자매들과의 관계 속에 비추어 보았을 때, 나에게 닥쳐오는 어려움 속에서 큰 것을 보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바람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생애를 통해서 겪었던 일들일 것입니다.저는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마음속에 묻어 둘 것이 아니라 많은 형제자매들과 함께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어려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말은 할 수 없습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그래도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 내가 볼 수 없던 것들을 볼 수 있게 나를 이끌어 주시는 그 힘에 대해서 굴복해야겠다. 순종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정도는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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