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를 생각하며 30회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브리서 9:1-222004. 11. 20. 강연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고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를 행하고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 일 차씩 들어가되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이 피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라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견고한즉 유언한 자가 살았을 때에는 언제든지 효력이 없느니라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와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책과 온 백성에게 뿌려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또한 이와 같이 피로써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9:1-22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신 예수세상을 살다 간 많은 사람들 중에, 또 지금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 히브리서 9장으로 인해 생애가 바뀐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은 모든 인류에게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히브리서는 히브리인들, 즉 유대인들을 향해서 기록된 성경으로,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유대인들이 유대교로 다시 뒷걸음질 치는 것에 대해 경고하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히브리서는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예수를 믿어 의롭게 된 사람들에게도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의 다른 내용들도 많이 알아야 하지만, 특히 히브리서 9장은 조금 어려워도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보면 참 좋은 내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성경은 전 세계 각 나라 언어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예로 들어 오늘날 대한민국 최고의 국어학자가 이 내용을 읽고 그대로 알고 확실히 깨닫는다면 자기가 국어학자인 것에 참으로 감사할 것입니다. 그러나 학자가 아닌 사람이라도 글을 읽을 줄 안다면, 그래서 이 내용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면 국어학자 이상으로 감사할 수 있습니다. 다른 언어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의 어느 나라 말이든지 자기 모국어로 누구라도 이 내용을 읽고 깨달았다면, 자기 생애가 아주 값진 줄을 알 것입니다.제가 어릴 때 한국에 전쟁이 났습니다. 폭탄이 떨어지고, 밤마다 총소리만 들리던 시절이었습니다. 하루 지나면 어디서 몇 명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콩 볶듯 하는 총소리를 듣고 지내는 중에, 부모님에게서 제가 태어난 곳은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왜 이곳에 와서 이 고생을 하나. 태어난 나라에 그대로 있었으면 전쟁은 겪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또 피난을 간 후에도 너무 가난하니까 ‘거기서는 잘 살았다는데, 왜 여기 와서는 이러는가.’ 하고 말 없는 원망을 하기도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 어느 해엔가는 인간으로서 삶을 포기할 정도의 상태가 되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꿈이여 다시 한번’ 하는 유행가 가사처럼, 마음속으로 ‘만약 내가 다른 생애를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릴 때로 시간을 다시 돌릴 수 있다면 좋겠다.’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그처럼 어려운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생각과 보이지 않는 원망, 불만들이 있었습니다.그런데 어느 날 성경을 확실히 믿게 된 후로는 “만왕의 왕 내 주께서 왜 고초당했나 이 벌레 같은 나 위해 그 보혈 흘렸네” 하고 이론적으로 알고 입으로만 부르던, 기억으로만 더듬던 찬송가 가사들이 마음에 이루어졌습니다. 믿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이 나라에, 그 시기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이것을 알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비록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 환경이 좋지 않아 사는 것이 힘들다 해도, “멀리 뵈던 하늘나라 내 맘속에 이뤄지니” 하는 찬송가 가사대로 무언가가 마음에 이루어지자, ‘어릴 때부터 느꼈던 즐거움을 다 합해도 이만큼 큰 마음의 평화가 있었을까? 이것이 아니었다면 세상에 태어나서 산다는 것을 어떻게 고맙게 여길 수 있었을까? 과연 태어나서 다행이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할 정도로 마음에 새로운 것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릴 때 아무것도 모르고 예배당에 다니면서 “갈 길을 밝히 보이시니 주 앞에 빨리 나갑시다 … 죄악 벗은 우리 영혼은 기뻐 뛰며 주를 보겠네” 하는 찬송가들을 불렀는데, 인기나 유명세로 보면 유행가나 학교에서 배우는 노래들보다 가치 없게 보였던 그 찬송가의 내용이 그렇게 고맙고 감사할 수가 없었습니다.그렇기에 히브리서 9장 내용은 이 세상을 살다 갔거나 지금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생애를 뒤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각과 감정 속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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