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계몽주의와 제국주의 시대에서의 복음 전파 2르네상스 이후에 발달하기 시작한 근대 과학은 절대 왕정 시기에 더욱 크게 진보했습니다. 이러한 과학의 발전은 ‘과학 혁명’이라고 불릴 정도로 획기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사람들은 신의 섭리가 아닌 자연법칙으로 세상이 움직인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과학적 사고방식이 만연함에 따라 근대 철학도 발달했는데, 이를 토대로 인간이 이성에 의해 진보된다는 ‘계몽사상’이 등장했습니다. 볼테르, 몽테스키외, 루소와 같은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무지와 미신을 타파하고 불합리한 제도와 전통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이에 따라 자연스레 사람들의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되었습니다.영국의 해외 선교그러나 반대로 이 시기에 영국에서는 복음이 크게 부흥했고, 많은 사람들이 국외로 나가 널리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이 다른 나라에 전해지기 위해서는 여러 요건들이 맞아떨어져야 하는데 영국은 그 요건들이 충족된 국가였기에 여러 나라에 선교사를 파견해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1) 영국의 신앙 부흥 운동처음 종교 개혁이 일어났을 때, 종교 개혁가들은 타국에 복음을 전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마르틴 루터도 예수께서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행 1:8 하신 말씀이 예수님 당시의 제자들에게 한정된 것이라고 이해했습니다. 또 당시 유럽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신앙을 선택할 권한이 없었습니다. 영주가 선택한 종교가 자신의 종교가 되었기 때문에 다른 나라로, 혹은 다른 영토로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그런데 30년간 종교 전쟁을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피폐해졌고, 교회는 세속화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17세기 후반에 독일에서는 개인의 구원을 중시하는 경건주의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경건한 신앙생활을 강조했는데, 그 과정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도 중요한 부분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독일에서 처음으로 경건주의 운동을 지도했던 슈페너의 제자 프랑케는 독일의 할레 대학을 중심으로 경건주의 운동을 펼쳐 나갔습니다. 당시 경건주의 운동의 영향을 받았던 덴마크의 왕은 프랑케를 찾아와 해외 선교를 지원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래서 프랑케는 덴마크 왕실의 지원을 받아 할레 대학의 학생 두 명을 덴마크의 식민지였던 인도에 선교사로 보냈는데, 이것이 국외 선교의 시작이었습니다.프랑케의 제자로 친첸도르프 백작이 있습니다. 그는 외할머니로부터 상속받은 영지에 모라비아 형제단이 정착하도록 지원해 주었고, 모라비아 형제단은 그곳을 기지로 삼아 여러 나라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들은 서인도 제도의 아프리카 노예들에게 선교사를 보낸 것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 선교사를 파견했습니다.친첸도르프 백작과 모라비아 형제단의 영향을 받았던 사람으로 훗날 감리교를 창시한 영국의 존 웨슬리가 있습니다. 18세기 영국에서는 웨슬리를 중심으로 복음 부흥 운동이 일어났고, 많은 사람들이 거듭났습니다. 그리고 교파를 초월해 선교에 힘쓰고자 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여러 선교 협회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로 인해 영국은 18세기, 19세기에 해외 선교를 가장 많이 한 나라가 되었습니다.2) 경제적 풍요해외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경제력이 갖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다음 지도에는 전 세계에 여러 속령을 두어 대영 제국이라고 불렸던 1920년대 영국의 영토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영국 본토의 크기는 한반도보다 조금 더 크지만 이 시기에 영국은 지구 전체 면적의 4분의 1을 식민지로 삼았고, 전 세계 인구의 4분의 1을 통치했습니다.작은 나라인 영국이 광대한 제국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종교 개혁 시대인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엘리자베스 1세가 영국을 다스릴 당시 유럽의 강대국은 스페인이었습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대항해 시대를 열면서 여러 나라에 식민지를 건설했는데, 1588년에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영국이 스페인의 무적 함대를 격파하고 승리하면서 영국의 대항해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영국은 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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