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를 생각하며 22회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히브리서 7:1-282004. 8. 7. 강연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이 사람의 어떻게 높은 것을 생각하라 조상 아브라함이 노략물 중 좋은 것으로 십분의 일을 저에게 주었느니라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는 자들이 율법을 좇아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가졌으나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그 약속 얻은 자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폐일언하고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 빎을 받느니라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 할 수 있나니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아직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니라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 제사 직분이 변역한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우리 주께서 유다로 좇아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니 증거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 못 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또 예수께서 제사장 된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저희는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자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저희 제사장 된 자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을 인하여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히브리서 7:1-28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니라히브리서 7장 내용은 성경을 몇 번 읽은 정도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참 어렵습니다. 구교를 믿는 사람이든 신교를 믿는 사람이든 평생을 교회나 성당에 다녀도, 성직자라 해도 성경 몇 번 읽어서 이 내용의 깊은 의미를 깨닫기는 어렵습니다. 또 이 내용에 ‘십분의 일’이라는 말이 자주 나오니 ‘아, 십일조를 내라고 하는구나.’ 하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과 다른 이야기입니다.이 내용은 히브리 민족의 처음 조상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이 멜기세덱과 만났을 때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보여 줍니다. 그때 아브라함에게는 자손이 생길 수 있는 어떠한 가능성도 없었습니다. 그 몸이 늙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으로 말하면 희망 없는 늙은이였습니다. 그런데 5절에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는 자들이 율법을 좇아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가졌으나”라고 했습니다. 또 10절에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아직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참 의미심장한 이야기입니다. 의학 박사들은 사람이 생식 기관을 통해 어떻게 태어난다고 설명합니다. 학교에서도 그렇게 가르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분명히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레위 족속이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났다고 했습니다.이 말은 사람이 생성되는 관계 이전의 이야기입니다. 사람은 남녀 모두 사람이 생성되는 가능성을 허리에 가지고 있습니다. 생식 기관은 적령기에 들어간 사람이 결혼을 하여 아이가 생기는 과정에 쓰일 뿐, 실제로 인간의 씨가 이어지도록 하는 힘은 허리에 있습니다. 사람의 허리에는 대동맥, 대정맥이 흐르는데 대동맥에서 골반 쪽으로 내려가는 혈관이 남자에게는 정자관, 여자에게는 난자관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교통사고가 난다든가 해서 허리를 다치면 남자는 자녀를 생산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 더러 그런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이 어떻게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기록될 수 있었습니까? 사람이 생성되는 과정은 피에서 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다만 피의 모습이 달라졌을 뿐입니다. 사람이 모태에서 만들어질 때 모체의 피는 아기의 세포 분열에 필요한 양식을 공급해 줄지 몰라도, 그 피로 아기가 형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인류학자나 과학자들, 또 생물학자들은 아이가 부모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만들어질 때 빨간 피가 사용되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 변할 수 없는 진리인 것입니다. 허리에 있는 대동맥에서 정자관으로 연결된 혈관을 통해 사람이 만들어질 때, 색깔 있는 피는 하나도 없었습니다.하나님께서는 성경에 이러한 내용들을 기록하셨습니다. 당대의 사람들로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할 내용입니다. 또 현대의 과학자들이나 생물학자들은 ‘그 옛날에 이런 것이 기록되었나?’ 하며 이 내용을 의아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2천 년 전 그 시대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그저 지나가는 말로만 들었겠지만 레위가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었
정회원으로 가입하시면 전체기사와 사진(동영상)을 보실수 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