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를 생각하며 21회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히브리서 6:192004. 7. 10. 강연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히브리서 6:19나의 달려갈 길여러분은 “해 지는 저편”이라는 찬송가를 부를 때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까?해 지는 저편 새 하늘에는 우리 주 예수 계시는 곳고난은 가고 찬란한 새벽 영광의 날이 밝으리라해 지는 저편 그 영광 중에 먼저 간 성도 만나 보리영원한 본향 그리운 그곳 이별의 슬픔 없으리라이 찬송가 가사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는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비록 우리 몸은 세상에 머물러 있더라도 찬송가를 부를 때는 영혼에 관계되는 것을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런 찬송가 가사는 현실에 몸 담고 있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생각나게 합니다.우리는 세상의 노래들을 감상하고 따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영혼 속에서 그런 세상 노래와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의 무게가 같다면 큰 문제입니다. 찬송가에는 우리 영혼에 무언가 안겨다 주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별의 슬픔 없으리라” 한 가사가 말 그대로 사실 아닙니까?그런데 세상을 바쁘게 살다 보면 찬송가가 누군가의 장례식 때에나 한번 불러 보는 노래처럼 남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장례식에서 누군가 읽어 주는 성경 구절을 듣는 것처럼, 찬송가도 그렇게 되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비록 내 육신이 세상에 살고 있더라도 영혼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어딘가 소망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노래로 채워져 있어야 합니다.우리가 찬송가를 부를 때, 목소리가 울리는 것도 좋지만 내 영혼에 무언가를 알려 주는 마음으로 부르는 것이 좋습니다. 어릴 때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하는 노래를 배웠을 것입니다. 이 노래 속 아이들은 하루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목표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시간에 매여 분주하게 살고, 세월이 가는 대로 시간을 소비하며 삽니다. 그런데 그 삶은 현재 보이는 것만을 위한 삶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몸은 세월에, 현실에 담겨 흘러 가고 있지만 영혼은 소망이 있기에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가는지 안 가는지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세월이 가니 늙어 가는가 보다.’ 할 뿐입니다. 아무 뜻 없이 살아가는 것이 소망 없는 많은 인생들의 삶의 조건이고 표현이고 모습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약속에는 어떤 목표가 있고 소망이 있고 갈 길이 뚜렷합니다. 성경에서 어떤 사람은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욥 23:10 라고 했고, 또 다른 사람은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딤후 4:7-8 라고 했습니다. 옛날 선지자들이나 신약의 사도들이나 비슷한 내용을 말했습니다. 그들이 가는 길은 자기 스스로 만든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 길의 주인이 있기에 그들은 그렇게 말했습니다.하지만 세상 사람들에게는 그 길이 없습니다. 가기 싫어도 할 수 없이 가게 되는 길만 있습니다. 그 길은 반드시 닥치게 되는 죽음의 길입니다. 세상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다릅니다. 세상을 사는 동안 많은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한번씩 과거를 뒤돌아보고 현실을 보고 미래에 대해 생각하면서 사람 사는 모습을 갖춰 보려고 애를 씁니다. 세상 삶은 얼마나 분주한지 모릅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돋보이기를 바라거나 그런 사람들의 제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이 오늘날의 모습입니다. 또 우리 인생은 참것을 소홀히 하고 그림자 같은 것을 숭상하며 좋아합니다. 그러나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눅 16:11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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