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를 생각하며 13회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히브리서 3:7-192004. 4. 3. 강연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게 하지 말라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에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를 노하여 가로되 저희가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니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게 됨을 면하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게 하지 말라 하였으니 듣고 격노케 하던 자가 누구뇨 모세를 좇아 애굽에서 나온 모든 이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셨느뇨 범죄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에게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히브리서 3:7-19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저는 히브리서를 읽을 때마다 마태복음과 사도행전 내용에 바로 이어지는 내용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히브리서 3장을 읽으면 이와 비슷한 신약 성경의 한 내용을 떠올리게 됩니다. 스데반이라는 사람이 자기 목숨을 걸고 동족에게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다가 돌에 맞아 죽은 사도행전 7장 내용이 여기 그대로 보이는 것입니다.스데반은 목사도, 장로도 아닌 집사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구약 시대부터 내려온 유월절 기간에 예루살렘 땅에 몰려와 있던 자기 민족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분이 어떤 분이었는지를 설명하다가 끝내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게 하지 말라 히브리서 3:7-8“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이라고 했고, “너희 마음을 강퍅게 하지 말라”라고 했는데, 이 내용은 시편 95편의 두 구절을 합한 것입니다. 대저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라 너희가 오늘날 그 음성 듣기를 원하노라 이르시기를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 맛사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하게 말지어다 7-8절그의 음성을 듣기 원한다는 말씀과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라는 부탁이 8절까지 이어집니다. 예수께서 탄생하시기 천 년 전에 성령께서 옛 선지자의 뇌 속에, 영혼 속에 훗날 예수께서 겪어야 할 고난과 괴로움이 일어나게 하셨고, 선지자는 그것을 시편에 기록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말하는 학문이나 지식 같은 무언가를 배우고 터득해서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성령께서 선지자의 마음을 움직여 기록하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스데반은 유대인들에게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행 7:51 라고 했습니다. 그들에게 무언가가 벗겨지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하다가 희생되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에서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하고 사도행전 내용과 연결해 그대로 설명했습니다.베드로는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벧전 1:10-11 라고 했습니다. 선지자들이 훗날 일어날 일을 예고해 주었다는 말입니다. 선지자들의 마음속에 일어난 것은 그들 스스로 생각해 낸 이야기가 아니고, 배워서 읊은 이야기도 아닙니다. 성령이 이르신 것입니다. 훗날 베드로는 이것을 설명하며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벧후 1:20-21 라는 부탁도 했습니다.그런 것을 보면 성령이 지시한 바에 의해서 기록했다고 한 베드로의 이야기와, 오순절 날 성령이 내린 후 베드로가 복음을 전할 때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스데반의 이야기는 연관이 있습니다.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이라고 한 히브리서 3장의 내용에서 ‘그의 음성을 듣기를 원한다.’, ‘마음을 걍팍하게 말라.’ 한 구약 성경 시편 95편의 부탁을 신약 성경의 스데반이 한 설교 내용에 연결해 설명하는 것을 보면, 여기에는 인간의 생각으로는 풀지 못하는 상당히 의미심장한 내용까지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7절부터 읽겠습니다.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7-11절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할지라도 없어지는 금보다 귀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 너희가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사람의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을 신뢰한다고 할 때 그것은 금전이나 명예, 다른 어떤 매개물로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사랑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부모 자식 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식에게 무엇을 전할 때 아까워하는 부모가 있습니까? 어떤 수고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사랑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결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내신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라고 했는데, 한번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는 길이 되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죽음을 통해 영원한 나라로 갈 수 있는 특권을 우리에게 허락하시고, 이를 위한 길을 여셨습니다.우리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신뢰해야 나의 삶에 보다 나은 희망이 있고, 보다 나은 진실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명예나 금전, 혹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무언가로 그 진리를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믿고 있는 것, 가지고 있는 것은 흔들리고 약합니다. 너무나 힘없는 것들이 우리의 생각을 잡고 있고, 우리도 그것을 붙잡고 있습니다.남녀가 서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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