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를 생각하며 12회인간을 동정하신 하나님히브리서 3:12004. 3. 27. 강연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브리서 3:1예수님의 인간을 향한 동정 과거의 종교 지도자들이나 창시자들 가운데 예수만큼 동정을 받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지난 2천 년간 많은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죽음을 동정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에 대한 영화가 상영되면 열심히 찾아가서 보기도 했습니다.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불쌍히 여겨 동정하시는 것과 우리가 믿음의 대상인 예수를 동정하는 것은 차이가 엄청나다는 사실입니다. 옛날에 교회에서 직분이 높고 잘 믿는다는 할머니 한 분이 평생 예수를 믿었다고 하면서, 예수님이 얼마나 불쌍한지 장가도 못 가 보고 죽으셨다고 예수님을 동정하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분을 동정하는 것이냐, 그 반대이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예수를 깊이 생각하고 예수의 죽음을 슬퍼하고 동정한다고 해서 그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믿음과 결부되느냐 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입니다.“그 동정의 눈빛과 음성을 나는 잊을 수 없겠네” 하는 가사의 찬송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 세파에 시달려 흐느적거리며 살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죽어 가는 우리 인생을 위해서, 처참하게 처벌될 너무나 불쌍하고 가련한 인간을 동정하여 대신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생애와 죽음에 관한 영화를 본다면 예수의 고난과 죽음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는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을 동정하는 것은 그분이 너무나 불쌍한 우리를 동정하셨다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세상에 오셔서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 요 12:27 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께서 탄생하시기 천 년 전에 기록된 시편의 말씀을 그대로 발표하신 것이었습니다. 40:7 참조 예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를 향해 기도하시면서 인간의 죄를 담당하기 위해 고난받아야 할 입장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그 예수께서 우리 인간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고 동정하여 구원해 주시기 위해 희생되셨습니다. 반대로 인간이 ‘아, 그분 참 불쌍하다. 어떻게 세상에서 겨우 33년만 살다 돌아가셨나.’ 하고 하나님의 아들을 불쌍히 여기기도 합니다. 한쪽은 위대한 약속에 의해 세상에 오신 하나님 아들 예수께서 우리 인간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겨 대신 희생하셨다는 입장이고, 다른 한쪽은 하나님 아들이 죽음으로 몰아붙여진 것을 인간적으로 동정하는 입장입니다. 이 두 가지 모두 사랑입니다. 하지만 그 차이가 상당하지 않습니까? 기독교의 기본 진리도 바로 이와 같이 양극단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한 사람들에게도 뻗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 베드로는 예수의 잡히는 그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칼을 빼서 예수를 잡으러 온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쳐서 떨어뜨렸습니다. 예수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달려들었던 이 사람의 용감함에 대해 예수께서는 ‘잘했다. 나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겠다더니 용감무쌍하게 달려들어서 이 일을 막았구나.’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렇게 대답하셨다면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를 세상에 보내신 본질적인 의도에서 벗어나게 됩니다.예수께서는 종의 귀를 자른 베드로에게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마 26:52-54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탄생하시기 천 년 전에 기록된 내용이, 하나님이 세우신 위대한 프로그램이 이제 인간에게 시작되려는데, 그 프로그램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사랑과 동정이 예수를 편들자 하나님 아들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용감함과 주를 위하는 뛰어난 기질을 다 무시하고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라고 하셨습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인간을 영원히 구원할 프로그램대로 맡겨 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반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들의 입장에서 하신 말씀입니다.이 일이 있기 전에 베드로는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마 26:33 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때 예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마 26:34 라고 하셨습니다. 또 예수께서는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눅 22:31-32 라고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베드로의 용감함이나 그가 주를 위해 발휘한 힘은 물론이고, 예수가 죽도록 재판한 사람, 죽는 데 내어 보내 죽인 사람, 예수께 침을 뱉은 사람 등 그들 전부가 인간에게서 솟아나는 힘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에 보탬이 되지 않습니다. 역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예수를 죽는 데 내어 주셔야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인간의 조상 아담이 범죄하여 하나님께서 그를 에덴에서 쫓아내실 때, 말 없고 저항할 줄 모르는 짐승을 잡아 가죽을 벗기고, 그것으로 인간의 수치를 가리는 옷을 지어 입혀서 내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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