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를 읽으면서 112회이에 성소 휘장이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둘이 되고마태복음 27:45-562003. 9. 20. 강연제육 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구 시까지 계속하더니 제구 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거기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가로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그중에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융을 가지고 신 포도주를 머금게 하여 갈대에 꿰어 마시우거늘 그 남은 사람들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엘리야가 와서 저를 구원하나 보자 하더라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되는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좇아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그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마태복음 27:45-56약속으로 세상에 나신 하나님의 아들저는 이 내용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다가 끝을 맞이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다 있는 일입니다. 대대로 역사를 두고 있었던 일이고, 지금도 있는 일이며, 앞으로도 있을 일입니다. 백 살 넘게 사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어떻든 결국 다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한 번 왔으면 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문제는 그 후가 준비된 삶인지 준비되지 않은 삶인지에 있습니다. 산다는 것은 세상에서 숨 쉬고 먹고 자는, 생을 영위하는 것 자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만 가지고는 삶이라고 단정 짓기 어렵습니다. 정신세계가 있고 영적인 세계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사람들은 큰 부담을 안고 세상을 살아갑니다. 잘 살아 보려고 해 온 노력들이나 경쟁들은 삶의 투쟁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태어날 때 세상에 그냥 왔습니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지위 있는 집안에 태어났다 해도 그 지위를 가지고 태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왕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해서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우리가 가진 금전도 행복의 기준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삶에 부대껴서 바쁘다 보니 잘 생각하지 않지만, 주위를 둘러보며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하는 답을 안겨다 줄 만한 사람들이 주변에 얼마나 있습니까? 우리는 세상에 왔으니 세상을 떠날 것인데, 많은 사람들은 그 사실조차도 인식하지 못한 채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마태복음에는 예수께서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에 옆에 있던 두 강도가 예수에 대해 빈정거렸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27:44 참조 누가복음을 보면 이 두 강도 중 한 사람은 뉘우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뉘우친 강도는 ‘우리는 우리가 저지른 죄 때문에 이렇게 당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23:40-41 참조 예수는 그 강도들 가운데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어 갔습니다. 그것도 자기 나라 사람들이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사형을 당했습니다.지금 우리 시대에서는 사형대에 달렸던 예수의 그 비참한 죽음이 상당히 화려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에 대한 상징으로 십자가를 표시해 놓습니다. 그 십자가를 멋있게 꾸미기도 합니다.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십자가 목걸이를 하기도 하고, 십자가를 허리에 차고 다니는 종교적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떠한 표를 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많이 가지고 있는데, 막상 그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라는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않습니다.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던 그분은 인간 역사에 참여해 인간에게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이사야서 52장에는 “이왕에는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랐거니와 후에는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며” 14-15절 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탄생하시기 약 750년 전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얼굴이 타인보다 상했다, 모양이 인생보다 상했다고 했는데, 분명히 예수님은 양옆의 두 강도, 즉 인생들보다 더 상한 모습이었습니다.물론 예수께서도 인생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인자’, 즉 사람의 아들이라고 칭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온 것은” 마 10:35, 요 10:10, 12:47 이라고 하신 말씀이나,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요 8:23 하신 말씀 등을 생각해 봅시다. 이 말은 예수에 대해 석연치 않게 여기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 무엇인가 맞지 않는 말입니다.예수께서는 “그러면 너희가 인자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 것 같으면 어찌하려느냐” 요 6:62 라고도 하셨습니다. 그분은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기 전에 계시던 곳이 있었습니다. 인간의 몸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서 태어난 예수라는 사람은 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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