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말씀이 내 입에 있는데 어떻게 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유재완 | 포천단짝 친구의 죽음으로 마음에 남은 죄책감 저는 1929년에 경기도 포천에서 태어났습니다. 지금 제가 살고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이니 90여 년을 한 지역에서 죽 살아온 셈입니다. 어렸을 적에는 서당에 다니면서 천자문을 공부했습니다. 여덟 살이 되던 해에 저는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동네에 저보다 한 살 많은 단짝 친구가 있었는데 집에서 밥숟가락을 놓고 나면 함께 나가 뛰놀던 사이였습니다. 어느 날 그 집에 가서 “아무개야, 나하고 놀자.” 하고 불렀는데 그 집 어머니가 나와서는 가라는 손짓을 하며 “우리 아이는 아파서 못 나가. 너 혼자 가서 놀아.”라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어렸고 아프다는 것에 대해 잘 몰랐던 터라 친구가 어디가 아프냐고 묻지도 않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그 집을 나왔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에 그 친구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그렇게 아이들이 죽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죽는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릅니다. 죽는 것은 노인들에게나 있는 일인 줄 알았기에 어느 집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무서운 줄 몰랐는데, 그 어리디 어린 친구가 죽었다고 하니 나도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너무 두렵고 무서워졌습니다. 친구가 산속 흙에 혼자 파묻혀 드러누워 있을 것을 생각하면, 밤에 무서울 텐데 어떻게 혼자 있을 수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후로는 하늘에 있는 해나 달, 별은 항상 살았고 변함이 없는데, 사람이 어떻게 하면 저것들처럼 항상 있고 죽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상상만 할 뿐, 사람이 죽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이 죽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의 죽음에 대해서도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 저는 나무 위에 있는 새 둥지를 보면, 나무에 기어 올라가서 알이 몇 개 있는지 확인하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알에서 새끼가 나오면 잡아서 기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새가 알을 까 새끼 새 소리가 나자 나무 위로 올라가서 가지를 흔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새끼 새가 떨어지면 주워다 먹이를 주며 길러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어미가 가져다주는 먹이를 먹지 못한 새끼 새들은 결국 고개가 축 늘어져 죽었습니다. 내가 일부러 죽인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내가 그 새들을 죽인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어른들은 제게 “얘야, 어미가 먹이를 물어다가 먹이도록 해야지, 그것을 왜 네가 잡아서 그러니? 그것은 죄가 안 되는 줄 아니?” 하는 말을 했습니다. 생물을 죽이면 죄가 된다는 말이 예사말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시력을 잃고, 복음을 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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