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를 읽으면서 69회마태복음 17:14-23마가복음 9:14-32누가복음 9:37-452002. 7. 6. 강연저희가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가로되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저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다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때부터 나으니라 이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 할 것이 없으리라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제삼 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심히 근심하더라 (마태복음 17:14-23)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이 말씀에는 병든 아들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의 모습을 자신과 비교해 보고는 ‘나와는 상관없다.’고 해 버리거나, ‘이런 사람이 있었나 보다.’ 하며 이 사람들의 문제라고만 생각하고 넘어가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내용이 정말 우리와 관련 없는 말씀인지 한번 생각해 봅시다.이 말씀에 등장하는 간질 환자는 참 불쌍한 사람입니다. 병든 자녀를 키우는 부모라면 자녀가 앓고 있는 병에 마음을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는 인생에 대해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전 2:23) 고 한 말씀이 있습니다. 근심과 수고가 전혀 없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세상 모든 사람은 약합니다. 인류 역사가 그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때 예수의 제자들을 찾아온 이 환자의 부모는 그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희망을 걸고 찾아왔는데도 낫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간질 환자는 다른 사람과 다른 것이 없습니다. 다만 발작 증세가 있을 때에 문제가 일어납니다. 그것은 뇌에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간혹 겉모습은 멀쩡한데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니 있거나 이상한 행동을 해서 사람들이 미쳤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간질 환자는 이런 사람들과 다릅니다. 평소의 행동이나 겉모습은 건강한 사람과 다르지 않습니다. 전에 제가 유럽 여행 중에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에 들러서 한참 옛 그림들과 예술품들을 감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옆에 있던 신사가 넘어졌습니다. 그러고는 발작 증세를 일으켰습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괴로워하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그러다 조금 뒤 발작이 멈추자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갔습니다. 옷차림도 말쑥하고 겉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뇌 속 깊숙이 어떤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순간 그런 것입니다.제가 인간적으로 참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도 간질 환자가 있습니다. 바로 <죄와 벌>이라는 소설을 쓴 도스토옙스키입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대문호가 되었을까, 그런 작품을 썼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저희가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가로되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저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마태복음 17:14-15)이 사람도 참 사정이 딱합니다. 만약 아들이 화가 나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설치는 것이라면 부모가 그렇게 걱정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자기 아들 성격이 그렇다고만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갑자기 병세가 도져서 불에도 넘어지고 물에도 넘어지기에, 아버지는 그 모습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괴로워했습니다. 아들이 낫기를 바라는 그 원이 얼마나 컸기에, 얼마나 한이 되었기에 낯선 사람에게 와서 꿇어 엎드려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부탁을 했겠습니까. 이때 이 아버지의 태도를 보면 그에게 간절한 기대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아버지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갔었습니다.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마태복음 17:16)그러나 제자들은 아들의 병을 고치지 못했습니다.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다 (마태복음 17:17)아버지의 말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 당시 세대에 대한 지적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때부터 나으니라 (마태복음 17:18)참 이상합니다.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간질 환자에게서 귀신이 나갔습니다. 물론 이 현상을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학자들 중에는 이 간질 환자는 귀신 때문에 그랬던 것이라고 한다든지, 간질을 앓는 것과 귀신 들린 것은 서로 다르니 이 성경 내용은 과학적으로 맞지 않다는 식의 말들을 하며 세월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그러나 여기에서는 그러한 의학적인 내용을 논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라고, 이 세대가 그러하다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지적하신 그 세대는,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마 3:2),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마 3:8) 하고 외쳤을 때 세례 요한에게 자기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고 침례를 받고, 하나님이 옳다 했습니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중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거부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았습니다. 세례 요한은 그들에게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마 3:9) 고 했습니다. 그 당시 예수께서는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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