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국 전도에 관한 보고서
최지은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그리고 태국. 이 동남아시아의 나라들은 복음 전도의 대상국이지만 이제까지 대다수에게는 큰 관심거리가 되지 못했다. 그런데 이 지역들에도 사업차 현지에 파견되어 살면서 끈기 있게 복음의 씨를 뿌려오던 형제자매들이 있었다.
최근에 동남아 지역의 복음 전도에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 일이 벌어졌다. 7년 동안 자유의 나라 태국에 드나들며 사업을 하던 한 형제가 복음 전도에 앞장서면서 태국의 목회자들과 교역자들이 연결되었고 그로 인해 태국 사람들에게 빠른 속도로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을 볼 때 “이보다 더 큰일을 하리라”,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던 예수님의 말씀이 새삼 오늘에도 적용되는 진리임을 실감하게 된다. 우리는 사전에 함께 모여 “태국의 복음 전도를 위해 이렇게 이렇게 합시다. 그리고 기도합시다” 라든지, “베트남의 복음 전도를 위해 준비된 누구누구는 무엇을 하고 언제 파견됩니다” 라고 회의를 연 적이 없다. 다만 함께 모여 복음이 전해져가는 일로 기뻐하고, 또 주님의 뜻을 생각하며 모이기에 힘쓰고, 새로 힘을 얻어 교제를 펼쳐져나가는 일과 대열에서 처지는 사람들을 추슬러가는 일을 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요일 4:12) 하신 사도 요한의 말씀이 이와 같이 이루어져가고 있다.
갓 태어난 새 생명은 아름답다. 그 산실에서 벌어지는 잔치를 잠시 눈여겨보고 함께 기쁨을 나누어보자.
첫 태국 전도 집회 전 이야기
2004년 2월
17, 8년이란 긴 세월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던 한 형제가 태국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2004년 초였다. 그 날은 정원에 맵찬 바람이 불었다. 그렇지만, 성경을 읽다가 그리스도의 피의 엄청난 효력에 대해 감동한 후 더욱 담대히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는 권윤자 여사의 이야기와, 권 여사에게 남쪽 나라 태국에 꼭 한번 방문하시라고 간청했던, 소위 괴짜 김삼식 형제에 대한 담소는 밝고 따뜻했다.
지금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짐작컨대 그 뒷 이야기는 이미 복음이 들어간 인도차이나 반도 주변의 국가들에 대한 이야기와 태국을 간다면 과연 복음 전파가 어떻게 가능할지를 생각하는 대화들로 이어진 듯하다.
2004년 3월
한편 나인기 형제는 사업 관계로 태국을 왕래하면서 몇 년 전부터 이미 김삼식 형제와 교제를 나누고 있었다.
“김 사장님이 구원의 첫사랑에 대한 감정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 어떤 희망이 보였어요. 그래서 그동안 교제 가운데서 크게 진행되었던 일들에 대해 알려주었지요. 성경탐구모임이 진행된 것, 집회가 끝나고 몇 명이 모였고, 선교센터가 어떤지, 또 권 사모님이 해외에 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하시는 이야기를 해 주었어요. 그랬더니 나에게 권 사모님을 한번 태국에 모시고 오라고 난리였어요. 한번은 방콕 시내에서 함께 일을 보다가 휴대폰으로 권 사모님께 연락해서 전화로 연결해 주기도 했어요.”
2004년 5월
밴쿠버에서 온 폴 백 형제와 권 여사 일행은 태국으로 갔다. 그때 권 여사는 김 형제를 만나서, 남은 날들을 복음을 전하며 살라고 충고했다. 태국은 복음 전도가 금지되어 있는 주변 국가들을 향해 복음의 산실 역할을 하기에 충분한 자유가 보장된 나라였다.
한국에서 온 일행을 고국으로 떠나보낸 김 형제는 그들이 소중한 형제자매라는 사실을 그제야 깨닫게 되었고, 며칠 동안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술 좀 그만하라고 권한 한 자매의 충고와, 복음을 전하면서 살라는 권 여사의 권고가 생각나서 그동안 수집한 비싼 술병들을 모두 챙겨서 술 좋아하는 이웃들에게 나눠주고는 한국의 권 여사에게 울면서 전화를 걸었다. ‘사모님, 사랑합니다’ 라고.
그러자 그의 마음을 헤아린 권 여사는 나도 그렇다며 그를 위로했다. 그 후 김 형제는 하나님과 그리운 형제자매들을 위해 자신이 할 일이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되었고, 한국의 윤대성 형제가 가져 온 ‘성경은 사실이다’비디오테이프와 그 밖의 여러 테이프에 몰입하게 되었다. 그는 과거에 들어 본 적이 없었던 권 목사님의 말씀이 아주 좋아서 듣고 또 듣고 하는 사이에 차차 주변의 사람들도 같이 말씀을 듣게 되었다. 그 결과 선교 활동차 태국에 와 있었던 한국인 선교사 한 사람이 복음을 깨닫게 되었다.
“김 선교사는 김 사장님과는 태국에서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사이인데, 김 사장님에게 전도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2년 전부터는 집을 왕래하고 같이 식사도 하다 보니까 성경 이야기를 하게 되었나 봅니다. 김 선교사는 김 사장님이 성경에 대해서 많이 안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타성에 젖은 교회들에 대한 불만이 많이 있는 상태에서 자기가 갖고 있는 신앙이 별다르다 보니까, 김 사장님이 이야기하는 성경 이야기에 더 호감이 갔던 것 같습니다.” - 나인기
한편 독립된 교회를 시무하고 있는 태국인 일라 목사는 우연한 기회에 김삼식 형제의 권유로 복음을 접하고 한국 성경탐구모임에 참석하게 된다.
2004년 8월 한국 성경탐구모임 마지막 날
한국에 도착한 일라 목사는 해외 숙소에서 머물게 되었는데, 우연히 대화하게 된 한 형제가 그에게 ‘당신은 구원받지 않았다’고 말하는 바람에 강한 거부감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는 해외 숙소로 돌아와서 짐을 싸기 시작했다.
“나는 분명히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았습니다. 그 이야기를 더 들을 이유가 없습니다. 내가 만약에 구원이 흔들리거나 어떤 의심이 있어서 도와달라고 부탁했을 경우에는 그런 말들을 기쁘게 들을 수 있지만, 처음 만난 자리에서 그것도 내 간증을 충분히 듣지도 않은 가운데 나의 신앙을 단정 짓는 것이 말이 됩니까. 이런 상황에서는 더 이상 대화할 수 없습니다. 비디오테이프로 들은 말씀도 좋았고, 믿는 사람들이 함께 일을 하면서 복음을 펼쳐나간다는 취지 등 여러 가지 좋은 면을 보았는데, 이 점만은 수긍이 안됩니다. 나는 태국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옆에 앉아 있던 정경화 형제는 깜짝 놀라 일라 목사를 만류했다.
“짐을 싸다니 무슨 소리입니까. 오해를 하신 것입니다. 오늘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먼저 만났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제부터는 당신이 한국뿐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다양한 교분을 갖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가시면 아까 그분이 오히려 놀랄 것입니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해서 대화를 풀어나가야지, 감정적으로 처리하면 함께 온 저나, 태국에 있는 김 사장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비행기 표가 아깝습니다.”
그랬더니 일라 목사는 그 일은 한 사람의 개인 성향이지 이 모임의 공식 채널의 생각이 아닌 것으로 보겠다고 대답함으로써, 일단 고비는 넘길 수 있었다.
“그래서 그날 저녁에 유 회장님께 가서 인사를 드렸습니다. 아까 짐을 싸 태국으로 되돌아 가버릴 뻔한 일이 있었다고 말씀드렸더니, 도대체 누가 그렇게 말했느냐고 하시면서 걱정하시더라고요. 그리고 본인의 어머니께 전도할 때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자신은 어머니께서 ‘왜 나에게는 구원받으라는 말을 하지 않느냐?’ 라고 할 때까지 마음의 부담을 주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해야 구원에 이를지 인도해 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마음만 들쑤셔놓는 경우가 있다고 우려도 하셨습니다. 마침 권 사모님도 들어오셔서 함께 또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대체로 회장님의 말씀이 이어졌습니다. 복음 전도가 비디오테이프 하나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복음은 사도행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베드로, 바울, 디모데 등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서 다양한 모양과 방법으로 복음은 전해져 왔다. 우리들도 사업을 통하거나, 직장을 통하거나 복음을 전하는 채널은 다양하다. 우리는 다양한 많은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하시면서 성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까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일라 목사가 감탄을 하는 거예요.” - 정경화
목사 신분인 일라 씨는 이미 구원의 확신까지 간직하고 있는 자기를 화나게 했던 일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한국을 떠나려고까지 했는데, 정말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었다. 그는 복음의 메시지를 들은 후 20년이 지나는 동안 오로지 하나님만을 섬기고 복음을 전하겠다는 일념으로 부모와 생이별을 한 사람이었다. 불교권으로 묶여 있는 가정과 고향을 떠나지 않으면 그가 가려는 길을 갈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집을 떠나기 위한 한 방법으로 신학교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긴 세월을 거쳐 무언가를 이루며 살아왔다고 생각을 했었다.
“어떻게 한 설교자를 만나 뵌 것만으로 내 생의 가치관과 목표가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는지 제 자신도 놀랍습니다. 정말 이 분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더구나 이 분은 제게 복음을 이러 이러한 식으로 전해야 된다고 주입을 하거나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저로 하여금 성경을 토대로 계속 생각을 하게 한 것입니다.” - 일라
그날 밤 그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생각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다.
첫째는 이 말씀 테이프가 태국어로 번역이 가능하다면 번역된 테이프를 가지고 태국에 가서 곧 복음을 전해야 된다.
두 번째는 이 한국의 교회에 목사가 없다는 것, 평신도가 중심이 되어 복음이 43년 동안이나 지켜져 왔다는 점이 놀랍다.
세 번째는 이미 작고하신 한 목사님의 메시지가 계속 복음 전하는 일에 쓰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대부분 전도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메시지를 사용하기 마련인데, 돌아가신 분의 메시지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복음을 전하는 일에 앞세우는 것과 그 일의 뒷바라지에 기쁨으로 참여하는 것에 대해 생각할수록 놀라움이 커지는 것이었다.
네 번째는 자신이 가장 큰 고통을 느끼고 있는 부분, 즉 목회 사업과 생계를 위한 금전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비즈니스에 대한 이 단체의 열린 생각 때문이었다.
끝으로 이 성경탐구모임이라는 행사는 거의 끝난 상황이었지만, 그가 느끼는 바 조직적이지 않고 자유로운 분위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참으로 일사분란하게 행사를 치렀을 것이라는 것을 눈으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날 하루 동안에 알게 된 것들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안성에 머무는 동안 연로하신, 권 목사님의 사모님 간증을 들었다. 또 태국으로 돌아가는 날에는 권 사모님의 간증과 이 교회의 첫 시작과 그동안의 내력에 대해 들었다. 오늘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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