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를 읽으면서 54회마태복음 13:31-35누가복음 13:18-212002. 3. 2. 강연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마태복음 13:31-35)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차이 이 말씀 가운데에는 ‘비유’라는 말이 나옵니다. 예수님도 비유로 말씀하실 때는 무척 신경을 쓰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쉽게 무엇에 빗대어 이야기를 하는데, 예수께서 말씀하신 비유들은 어떤 이야기 속에서 흘러가 버리는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실제 인간 역사 속에서 인간의 삶과 직결되는 내용들이었습니다.예수께서 말씀하신 비유들은 나이 들어 죽거나, 병들어 죽거나, 전쟁에서 죽거나, 태어나다가 죽거나, 아이를 낳다가 죽거나 하는, 죽음이 생사를 가름하는 인간의 생애에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입니다. 사람은 왜 자신이 세상에 태어났는지, 왜 살다가 죽는 것인지,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갈 곳이 있는지 없는지, 가서는 어떻게 되는지, 인류 역사는 마냥 뻗어 가는 것인지 아닌지를 알지 못합니다. 또 사람들이 잘못 살아가거나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 대가는 어떻게 됩니까? 자신을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 남에게 피해를 준다든지 남을 괴롭혔다면 어떻게 됩니까? 인간의 삶에는 이렇게 서로 다른 희로애락의 문제들이 있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모습만 달라졌을 뿐,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의 생각은 다 똑같아 같은 역사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러한 인간 세상에 오셔서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그 비유들은 사람들이 달콤하게 생각하고 ‘그 이야기 좋더라.’ 하며 감상에 빠지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사람이 알아들어야만 하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귀가 둔하고 이해력이 약하기 때문에, 또 예수께서 하신 그 말씀을 빼앗아 가 버리는 자가 있기 때문에, 자기 생각 바탕의 문제들 때문에 듣기는 하되 그 들은 말들이 자기에게 유익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어진 말씀도 제대로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하는 인생에게 예수께서 ‘길가에 뿌려진 씨는 어떠하다, 가시떨기 위에 떨어진 씨는 어떠하다, 돌밭에 떨어진 씨는 어떠하다.’ (마 13:3-8 참조) 라고 비유로 말씀하신 것은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닙니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그냥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하는 예수님의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 고민은 예수의 죽음과 직결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요 3:16) 라고 하셨는데, “이처럼”이라는 말은 쉬운 말이 아닙니다. 이 말씀을 하신 분이 모진 고난과 고통, 괴로움과 역경, 이 모든 것을 겪어야 “이처럼”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구절을 노래 가사에 넣어 부르기도 하며 쉽게 말하지만 이 말씀은 결코 쉬운 내용이 아닙니다. 이 비유의 말씀은 누가복음에도 있습니다. 누가복음 13장 18절을 읽어 보겠습니다.그러므로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꼬 내가 무엇으로 비할꼬 마치 사람이 자기 채전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누가복음 13:18-19)예수께서는 간단하고 쉬운 이야기이기에 이것이 너무 어렵게 설명될까 봐 염려하셨습니다. 어렵게 전파되는 것이 부담스러우셨던 것 같습니다.이 말씀에서는 ‘비유컨대’가 아니라 ‘뭐라고 말할까’라고 하셨습니다. 말하시는 분의 답답함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그냥 쉽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사사건건 많은 일들이 있는 세상에서 딱 집어서 뭐라고 말하면 될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고전 2:11) 하는 말씀대로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사정이 있는 것입니다.또 가라사대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할꼬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 (누가복음 13:20-21)그냥 ‘비유컨대 이렇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말씀은 하셔야 되는데 먼저 “무엇과 같을꼬”라고 하시고, 다시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할꼬”라고 어디에 비할지 고민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심정은 구약과 신약성경을 읽을 때 비로소 ‘아, 예수님의 사정이 여기 있었구나.’ 하고 알게 됩니다. 성경에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차이를 살펴보겠습니다. 예수께서는 마태복음에는 천국에 대해 비유로 말씀하셨고 누가복음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꼬”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에는 분명히 ‘천국’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누가복음에는 ‘하나님 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말씀은 같아 보이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또 마태복음에서는 달란트 비유를 말씀하시고 (25:14-30 참조), 누가복음에는 므나의 비유를 말씀하신 내용이 있습니다. (19:12-27 참조)이것들을 같은 내용으로 섞어 버리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에는 달란트를 그 사람의 재능대로 맡겼다는 말이 있지만, 누가복음에는 열 명에게 열 므나를 주었다고 되어 있지 각각 불러서 하나씩 주었다는 말이 없습니다. 마지막에 회계할 때는 한 사람씩 따로 불렀습니다만, 맡길 때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각 사람에게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누가복음에는 종 열을 불러 열 므나를 주셨다는 이야기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태복음에 천국 비유로 말씀하신 것과 누가복음에 하나님 나라를 비유로 말씀하신 것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두 말씀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9장 11절입니다.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저희는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러라천국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누가복음을 읽다 보면 사람들이 질문하는 내용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것임을 볼 수 있습니다. 또 누가복음 18장에는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예수께서 저를 보시고 가라사대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24-25절)이와 비슷한 말씀은 마태복음에도 있지만, 사실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하셨던 말씀을 잊으신 것이 절대 아닙니다. 예수님은 정확하고 무오한 분입니다.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마태복음 19:23-24)성경을 잘못 읽으면 하나님 나라나 천국이나 같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말씀을 보면 분명히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내용은 누가복음 전체에 기록되어 있지만, 마태복음에는 하나님 나라라는 말이 세 번 정도만 나옵니다. 그 외에는 전부 천국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 한 말씀 속에 천국과 하나님 나라를 구분하여 말씀하셨습니까?누가복음 17장을 보겠습니다. 성경학자인 바리새인들은 그들이 가장 바라는 것에 대해 예수께 질문했습니다. 20절입니다.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 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20-21절)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이 바리새인들의 소망이었기에 그들은 예수께 어느 때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느냐고 질문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 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여기에서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 만한 니고데모가 예수께 한 이야기를 보겠습니다.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요한복음 3:1-2)이때 바리새인들 중에는 예수께서 하나님께로서 오신 분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니고데모는 밤에 예수께 와서 “랍비여 우리가”라고 했습니다. ‘내’가 아니고 ‘우리’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신은 하나님의 힘으로 표적을 행하신 것 같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왔습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3)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하고 물었을 때 예수께서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하셨지만, 각 개인이 거듭나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 말씀의 뜻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에게 물으면 ‘멀리 뵈던 하늘나라 내 맘속에 이뤄지니 … 그 어디나 하늘나라’ (찬송가 495장) 하고 자기 마음속에 이루어진 것을 찬양합니다. 이때 니고데모나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이라고 추어올렸지만, 예수께서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에 갈 자격을 얻기 위한 방법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또 이때 예수께서는 “네게 이르노니”라고, 니고데모 한 사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아니라 ‘네’가 거듭나야 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개인입니다.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요 1:9) 라는 말씀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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