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를 읽으면서 48회마태복음 12:38-422002. 1. 19. 강연그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심판 때에 남방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마태복음 12:38-42)표적을 구한 유대인마태복음 12장 38절에서 42절 말씀 가운데에는 우리가 신경을 써야 될 문제가 있습니다. 시대 구분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여기에 ‘이 세대’라는 말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 세대’는 예수께서 직접 설명하시던 그때, 그 세대 사람들을 말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살아나신 후도 아니고, 지금도 아니고, 예수께서 설명하시던 바로 그때입니다. 이후 세대 사람들에게 이 내용이 교훈은 될지 몰라도, 이 내용은 예수께서 살아 계실 때 예수께 질문을 하고 표적을 구하던 그 세대 사람들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마태복음 12:38)‘그때에’ 예수께 “우리에게 표적 보여 주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이때의 사람들이지 다른 시대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때 예수께 질문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즉 당시의 유대인들에게는 희망사항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다른 민족과 달리 어떤 표적이나 이적이 나타나는 것을 바랐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훗날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고전 1:22) 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이 말을 했던 때는 예수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입니다. 당시는 로마 사람들이 당대의 역사를 휘어잡고 많은 나라를 통치하던 때였지만, 그들의 두뇌와 사상은 그리스, 즉 헬라의 사상과 철학이 잡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헬라 사람은 지혜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헬라 사람들은 참 지혜로운 사람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도 헬라 철학을 모르면 철학자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헬라 시대는 철학의 기초를 닦은 시절이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닙니다.사도 바울이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라고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헬라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나타내 보이신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특별한 일들이 그들의 역사를 통해서 자주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부터 시작해서, 그가 이삭을 낳을 때도 이삭은 태어날 수 없는 상황에서 태어났습니다. 야곱이 열두 아들을 낳고 그들을 데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살았던 일이나, 그 민족이 훗날 육십만 대군이 되어 애굽을 탈출한 일도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는 아주 놀랄 만한 이적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나라가 블레셋에 형편없이 짓밟힐 뻔할 때에도 다윗이라는 조그마한 소년이 나와 골리앗이라는 거대한 장군을 물맷돌 하나로 쓰러뜨린 일이 있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운영하신다는 것을 역력히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런 표적을 바랐습니다.그러나 헬라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인간 역사에 흐르는 모든 지혜를 말과 글로 짜임새 있게 발표했습니다. 헬라에는 우리가 잘 아는 소크라테스 같은 유명한 선생이 있었는가 하면, 그 제자 플라톤도 있었습니다. 성경에 에비구레오, 스도이고라고 나오는 에피쿠로스 철학, 스토아 철학 같은 것들이 모두 헬라에서 나온 사상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혜를 찾는다”고 한 것입니다.하나님의 지혜와 인간의 지혜고린도전서 1장을 18절부터 25절까지 읽어 보겠습니다.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라고 했는데, 우리는 여기에서 혼돈하지 않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18절에 보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말씀이 있는데 ‘십자가의 도’라는 것은 세상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고, 그 십자가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되고, 십자가가 어떻게 해서 사람을 구원하는지를 알았을 때 그로 인해서 구원이 된다는 것은 세상 지혜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지혜이기 때문에 당시의 사상으로는, 인간의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성경은 인간의 지혜로 십자가의 도를 알려고 하고 십자가로 인해서 인간이 구원된다는 내용을 밝히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지혜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지식이 오랜 세월 동안 쌓이고, 그렇게 쌓인 지식을 점점 더 많이 배움으로써 인간의 지혜의 폭이 넓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의 지혜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어떤 사람이 새를 관찰하면서, 새가 알에서 부화되어 자라고 날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멋있게 책으로 썼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렇지만 그 새 자체가 없다면 그 내용은 이론으로만 그칠 뿐입니다. 교육이 교육에 의해서 발달해 갈지는 몰라도, 이론이 점점 강해질지는 몰라도, 실체가 없으면 그 모든 것은 이론에 불과합니다. 실체는 무엇입니까? 생명이 생명을 낳아 이어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생명의 연장이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지식의 연장은 다릅니다. 인간이 세상에 많이 태어나면 태어나는 만큼 지식도 상당히 많이 발달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배워서 알아 가는 것뿐입니다. 지식은 지식으로 전달되는 반면에 참새가 알을 낳을 때 배워서 낳는 것이 아닌 것처럼, 생명은 생명에 의해서 전달됩니다.저는 언젠가 어떤 어리석은 새에 대한 방송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새는 자기가 낳은 것보다 훨씬 더 큰 알이 자기 둥우리에 있어도 그것이 자기가 낳은 것인 줄 알고 자기 알과 같이 그 알을 품습니다. 작은 어미 새는 배운 것도 아닌데 자기 종족 유지를 위해서 본능적으로 자기 둥지에 있는 알을 길러 주고 먹여 주었습니다. 그 큰 알에서 나온 새끼는 몸집이 크지만 자기가 낳은 새끼들은 어미처럼 작습니다. 어미 새는 새끼들에게 먹이를 가져다주는데, 큰 알에서 나온 새끼는 어미 새의 새끼들을 둥우리 밖으로 밀어 떨어뜨리고 혼자 먹이를 받아먹습니다. 바로 뻐꾸기 새끼입니다. 키워준 어미 새는 참새만한 크기인데, 큰 알에서 나온 뻐꾸기 새끼는 어미 새보다 커집니다. 얼마 지났을 때 가까운 나뭇가지에 앉은 새 한 마리가 ‘뻐꾹’ 하면 그 소리를 듣고는 따라가 버립니다. 잘 키워 주어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날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뻐꾸기는 그렇게 생명 연장을 합니다. 이런 것을 포착하여 찍고 화면에 내보내는 것은 인간의 지혜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이 있더라.’ 하고 전달하는 정도밖에는 안 됩니다. 사람들이 활동 사진기를 발명하고 필름을 발명하여 그 새들의 삶의 모습이 그대로 찍혀 나오는 일이 가능해졌는데, 요즘에 와서는 한 사람의 생애가 조그마한 저장 매체 안에 다 들어가 버립니다. 그것도 사람들의 지식과 지혜의 폭이 넓어진 결과이지만 그 안에 생명은 없습니다. 사람이 지혜를 가지고 발전시킨 것뿐입니다. 그러나 그 모습을 찍어 설명해 주는 것이 하나도 없어도, 5월이면 산속에서 어김없이 뻐꾸기 소리가 울립니다. 이쪽 산에서 ‘뻑!’ 하면 저쪽에서 ‘꾹!’ 하는 소리를 자주 들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기록하여 작품을 만들고 글을 쓰고 필름에 담기도 하지만, 그런 활동은 그 새들의 생명 연장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하나님께서는 근본 생명에 대해 설명하시기 위해서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고 하셨습니다.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고린도전서 1:18-20)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셨다는 기준에서 볼 때 세상의 지혜는 아무리 모습이 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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