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회 국내외 성경탐구모임2013. 7. 29. 강연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요한복음 6:63)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성경을 읽다 보면 선악과에서 시작된 먹는 문제가 뒤이어 계속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 먹는 문제로 인해 사람들과 가장 적나라하게 부딪히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서기관들이, 율법사들이 각자 자신들의 인간적인 잣대로 예수님을 계속 공격했는데, 공격한 많은 이유들 중 하나가 먹는 문제였습니다.요한복음 6장에는 예수께서 무리를 먹이신 이야기가 나오고, 떡에 대해, 생명의 양식에 대해 말씀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이 내용들은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63절) 는 말씀으로 연결됩니다. 요한복음 6장을 읽으면서 아모스 8장 11절의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하신 말씀을 자세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제, 그 문제를 예수께서는 어떻게 다루고 계신지 살펴보려고 합니다.성경에 기록된 먹고 마시는 문제나 돈 문제가 우리에게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6장을 읽어 보면, 우리의 생활과 행동에 아주 밀접해 있는 그러한 문제들은 바로 육에 관한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문제들이 예수님의 입을 통해 성경 말씀에 표현되어 있는데, 그런 것들은 우리 영혼과도 직결되어 있습니다.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말씀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옴과 동시에 행동으로 이어지고 물리적으로 화학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내뱉은 말은 허공을 떠다니지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헛되이 흩어지지 않고 계속 진행됩니다. 이루면서 나아가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태양 빛이 태양을 떠나 지구에 도착할 때까지 일직선으로 뻗어 나가듯이, 하나님의 말씀도 그렇습니다.우리는 성찬식을 할 때 떡을 나누어 먹고 포도주를 나누어 마십니다. 떡과 포도주를 먹는 문제, 또 어떤 것에 대한 값을 치르는 지불의 문제를 성경을 통해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을 집행하는 주체가 우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십일조를 내거나 헌금을 하면 그것이 일 맡은 사람들을 통해 쓰여서 떡이 되기도 하고 포도주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람 사이에 먹을 것이나 재물을 주고받는 일이 있기에 우리는 교제 가운데 있는 일들도 인간 사회에서 서로 주고받으며 교환하는 일처럼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질문을 보면, 그 내용이 참 의미심장합니다.요한복음 6장 1절부터 보겠습니다.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요한복음 6:1-5)여기에는 유대인들과 굉장히 밀접하고 직결된 내용들이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산에 오르셨다고 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시온산과 같은 산에 대한 내용들이 많이 나옵니다. 또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웠다고 했습니다. 유월절은 양을 잡아 제사를 지내는 날입니다. 그때 예수께서 큰 무리를 보셨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눈이 그곳에 있는 무리를 바라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무리가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고 빌립에게 물으셨습니다. 이때 물으신 것은 답을 다 알고 계시면서 시험하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요한복음 6:5-6)이 이야기는 돈과 관계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떡을 산다.’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산다는 것은 돈을 주고 물건을 받아오는 것으로, 매매입니다.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요한복음 6:7)빌립은 얼마나 계산이 빠른지, 무리를 둘러보고는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다고 예수께 답을 드렸습니다.그런데 이때 계산과는 전혀 관계없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안드레입니다.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요한복음 6:8-9안드레는 예수께 한 아이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내용을 읽을 때마다 ‘도대체 안드레는 무슨 생각으로 이 아이를 예수님 앞에 데려왔을까? 믿음이 있어서였을까, 아니면 예수님을 한번 떠보려는 것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는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라고 했습니다. 안드레도 계산은 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우리 인간의 계산 방법입니다.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옥으로 가는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구원하겠느냐고 물으신다면, ‘십일조 얼마를 걷어야 합니다.’, ‘헌금 얼마를 걷어야 합니다.’, ‘고해성사를 몇 번 해야 합니다.’, ‘제사를 몇 번 지내야 합니다.’ 등 다양한 대답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예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저는 이 오병이어에 대한 내용이 아주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예수께서 5천 명을 먹이시는데, 그 큰 무리를 예수님 앞에 일렬로 정렬시키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쯤 되더라 (요한복음 6:10)예수님은 이 사람들에게, 나에게 와서 줄서서 구걸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나에게 부탁하라고 하신 것도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하신 말씀처럼 앉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앉게 하라” 하신 이 한 마디를 들으면 저는 ‘그렇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우리 가슴을 찌르는 것입니다.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요한복음 6:11)어떤 자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까? 우리는 성경을 자세히 보아야 합니다.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이스라엘 땅에서 실제로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음식을 먹은 일에 대한 기록입니다. 먹을 것을 제공하시는 예수님의 행위와 사람들의 먹는 행위, 그 세세한 것들을 설명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목소리, 그것이 성경 말씀입니다. 거기에 우리는 지금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떡을 떼시니 떡이 만들어지고, 물고기를 나누어 주시니 그 자리에서 물고기가 창조되었습니다. 물론 창조주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님을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주시기 위해 행동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입장과, 주는 것을 받아먹는 인간의 입장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입장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습니다.여기서 우리가 깊이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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