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를 읽으면서 40회마태복음 10:24-332001. 11. 3. 강연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마태복음 10:24-33)제자가 선생보다 종이 상전보다 높지 못하니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마태복음 10:24-25)이 말씀은 대단한 선생 아래에 있는 제자가 선생보다 실력이 못하다든지 일을 못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은 선생이고 제자는 제자라고 하는 그 위치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잘못 해석하면 성경의 많은 내용이 틀리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분명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 14:12, 26) 고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이 예수께서 하신 것보다 더 큰 일을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하지만 제자들이 한 일은 근본적으로 선생의 목적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이 전도를 할 때 3천 명, 5천 명, 7천 명이나 되는 많은 수의 사람들에게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예수께서 하신 일이 기초가 되어 있었습니다. 말씀을 전하시는 예수님의 조용한 음성은 비록 겉으로는 제자들만큼 많은 사람을 움직이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지만, 그만큼 우렁찼습니다. 제자들의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고 설득력 있게 복음을 전하고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회개하도록 했다 할지라도 그 힘은 예수님만큼 되지 않습니다.제자들이 큰 소리를 내고 떠든 것은 인류의 대스승인 그리스도 예수님이 하신 일과 죽으심, 부활하신 도를 전한 것이지, 선생님께 어떤 것을 적당히 배우고 다른 무엇을 또 배워서 실력을 쌓아 많은 것을 알았던 것이 결코 아닙니다. 제자들이 한데 모여서 전했던 것은, 갈보리에서 조용히 숨져 간 예수와, 그분이 사흘 만에 살아나셨다는 부활에 대한 것이었습니다.지금 우리가 볼 때는 예수께서 칭찬하셨듯이 제자들이 큰일을 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라고 하신 것처럼, 종은 끝까지 종이고 상전은 끝까지 상전이고 주인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 그리고 우리 믿는 사람들과 우리가 주라고 부르는 예수님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는 인류의 대진리는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성경을 보다 보면, 종이 상전이 되거나 상전이 더 낮아지는 일들이 있습니다. 또 “계집종이 주모를 이은 것이니라” (잠 30:23) 하는 말씀처럼 위치가 갑자기 뒤바뀌는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와 제자들의 위치는 변동될 수 없습니다. 인류 역사 가운데 예수를 믿는다는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을 주라고 부르게 되어 있고, 그 영혼은 주님을 따르게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한 칸 낮은 위치에서 예수를 따르고 배우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어떻든 최고의 위치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밝히셨습니다.그런데 예수께서는 무엇을 말씀하시기 위해서 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제자가 선생보다, 종이 상전보다 높지 못하다고 하셨는데, 세상일에는 높고 낮은 것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수를 주라고 부르는 기독교인들을 살펴보면, 그 주인보다 더 위대한 자리를 차지하고 세상적인 영광을 구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예수께서는 자기 자리를 비우시고 자기 영광을 다 버리고 죽기까지 복종하러 오신 분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주라고 부르고,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하고 말하면서도, 세상적인 위치로는 가장 높은 곳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그러한 높은 위치에 앉아 예수의 종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는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것과 같은 일을 자기 생애 가운데 절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한두 번 그러한 행동을 할 뿐입니다.기독교의 역사는 그렇게 흘러왔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을 들은 사람들 가운데, 훗날 사도들이 그들 옆에 없을 때에 많은 성도들 위에 군림하며 지배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사도들은 그들에게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부요하며 우리 없이 왕 노릇 하였도다” (고전 4:8) 라고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외형상의 위치는 상당히 높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하는 말씀에 말로는 ‘과연 그러합니다.’ 하면서도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좋은 위치에 들어간 사람도 많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어떤 직위를 빙자한 사람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나 이 진리를 참으로 깨달았던 사도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고난과 핍박, 괴로움을 마땅히 받아야 될 자로 자처하면서 고통과 외로움과 답답함을 몸소 겪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심지어 살 소망이 끊어졌다는 말까지 했고 (고후 1:8 참조), 또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고전 4:9) 라고도 했습니다. 사도들을 통해 예수 믿은 사람들에게 편지를 하면서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고후 4:12)고도 했습니다. 초대교회 시대의 사도들, 예수님의 제자들은 참으로 선생보다 더 낫지 못한 위치에서 살았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빌 1:29) 하신 말씀 그대로를 몸소 겪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단호하게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선생이, 상전이 대접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제자가, 종이 대접받기를 바라거나 세상에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서 고난을 피하면 이 말씀에 위배된다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리입니다.전에 저는 어느 그리스도인의 일기장을 읽다가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미국 식민지 시절에 전도하던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라는 사람이 쓴 ‘그리스도께서, 내 주 예수께서 오셔서 고난 받으신 이 세상에서 내가 무슨 낙을 바라겠느냐.’는 내용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많은 고통 속에서 살았던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이 내용은 어떤 도덕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제자들이 훗날 겪을 일을 미리 아시고 하신 이야기입니다. 제자들은 세상에 오셔서 대접받지 못하고 고난을 당하신 예수와 같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며 살았습니다.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다고 하신 이 말씀에 과연 내 생애도 그러한지 한번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우리는 찬송가 가사 중에서도 주가 고난 받으셨으니 나 또한 고난 받는다는 자세를 볼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등에 지고 주의 뒤를 따라가리라(합동찬송가 243장 주의 음성 들은 이 몸)우리가 부르는 찬송을 이론이나 노래로만 끝낼 것이 아닙니다. 생활에 묻어 들어오는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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