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강연은 ‘요나의 표적밖에는’ 2008년 1월 12일 강연을 정리한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잠언 19:21)요나의 불순종을 따지지 않으시는 하나님요나서 1장 1절부터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선가를 주고 배에 올랐더라 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 폭풍이 대작하여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된지라 사공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선장이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니라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인하여 우리에게 임하였나 알자 하고 곧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당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청컨대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고하라 네 생업이 무엇이며 어디서 왔으며 고국이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 자기가 여호와의 낯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고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에 돌리고자 하다가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 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까닭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의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삼일 삼야를 물고기 배에 있으니라 (요나 1:1-17)요나서를 읽다 보면, 요나의 입장에서 요나가 순종하는 모습과 불순종하는 모습에 자신을 대입해 보고 하나님 앞에 나는 어떤 자세로 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요나의 모습은, 과연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우리 개인의 신앙 문제만을 다루고 있을까요? 아니면 요나의 모습 속에는 우리 개인의 문제를 뛰어넘어 성경 전체에서 다루고 있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과 계획, 그리고 그 계획이 역사를 통해 성취되어지는 모습이 비취고 있지는 않을까요? 창세기 22장을 읽다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어떤 자세를 취했는지 나타납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창 22:2) 는 하나님의 명령에 어떻게 임했는지를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요나서를 보면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명령하신 내용이 나오고, 그가 그 명령에 어떻게 임했는지가 나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과 요나의 자세를 비교하여 도덕적인 기준에서 바라보고는, 아브라함은 말을 잘 듣는 사람이고 요나는 말을 안 듣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살면서 항상 말을 잘 듣고 살았습니까? 하나님께서 분명히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창 15:4) 는 말씀을 하셨음에도, 아브라함은 종에게서 자식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에 대해 성경에서는 아브라함이 잘했다거나 잘못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요나서를 읽어 보고, 도덕적으로 생각해 보면 요나는 잘못을 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았음에도 그 말씀을 어기고 다른 곳으로 달려간 잘못을 행했습니다. 요나서 1장의 내용 속에 그 잘못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말씀 중에 ‘요나가 내 말을 안 들었다.’라는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의 말을 듣고 종과 동침하여 종의 아들을 낳은 일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는 ‘네가 왜 그렇게 했느냐.’라는 질문을 하지 않으십니다. 또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등지고 욥바에 내려가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을 때 바다가 흉용했다는 내용은 있습니다만,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너 내 말을 듣지 않았으니 혼나 봐라.’ 하는 식의 말씀은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께서는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마 12:39) 고 말씀하셨고, 또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요 8:58) 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이 도덕적인 잣대로 계산하는 것을 훨씬 뛰어넘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예수님의 입을 통해 우리에게 들려지고 있는 것입니다.성경, 특히 구약 성경을 보면 그 속의 인물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것에 순종했느냐 불순종했느냐에 따라 훗날 민족에게, 또 개인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영향력에 대해 설명해주는 말씀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고 잘못을 물었던 사람은 아담뿐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아담에게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라고 질타하시고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뱀의 후손과 맞서게 될 여인의 후손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창 3장 참조 여인의 후손이라는 사람이 나타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이 주어져 있는 상태에서 역사가 흘러왔고 많은 사건이 있어왔습니다. 유대 민족의 역사 속에 태어나는 한 사람, 그의 죽음으로 인해 성경에 약속되었던 복이 많은 민족에게 흘러가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성경의 기본적인 계획이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구체화되고 실현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요나에게 잘못을 따지지 않으신 것을 생각해 보면, 그들의 삶 속에 있었던 사건들은 마치 그들 때문에 우리가 죄인이 되었다기보다, 우리가 죄인이 되었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실 것인지 미리 계획하시고 그 계획을 이루시는 과정을 우리에게 어렴풋이 보여 준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롬 5:19) 하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잘못했을 때 “내가 너더러 먹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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