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리는 ‘로마서를 읽으면서’ 2000년 9월 30일 강연을 정리한 것입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로마서 13:10)
사랑의 빚 외에 아무 빚도 지지 말라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로마서 13:8-14)
이 말씀은 신앙생활과 직결되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가 성경과 어떠한 관계 속에 사는지 살펴볼 수 있도록, 아주 정확하게 하신 말씀입니다. 8절을 보시면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서로 간의 관계에서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요 13:34 참조 이 말씀에서는 그처럼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책임을 먼저 부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우애하고 친절을 베푸는 것들이 다 들어갑니다. 그런데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했는데, ‘아무’에는 여러 가지가 포함된 것 같습니다. 거기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금전 관계입니다. 성경은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엡 4:28 고 했습니다. 도둑질하던 자들이라도 다른 사람들을 돕고 구제하기 위해서 자기 손으로 일하라는 부탁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수고 없이 남의 돈을 빌려서 갚지 않는다면 문제가 큽니다. 남에게 신세를 지면 등은 따뜻하고 편할지라도 마음이 불편하지만, 남을 도우면 육신은 고달플지라도 마음은 편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정도는 알아야 됩니다. 저는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하신 이 말씀을 보면서,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사람들과 얼마나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남에게 봉사하고 남을 돌보고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찾는 일 등 그리스도인으로서 할 일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쉬우면서도, 생활과 직접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상당히 어렵기도 합니다.우리는 예수 믿은 후에 믿는 사람들과의 교제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덕이 되고 도움을 주려고 얼마나 노력했습니까? 이것은 우리의 의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었다는 사실만 있을 뿐 다른 무엇이 아무것도 없다면, 마지막에는 부끄러움이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형편이 좋을 때만 성도들을 사랑하고 어려울 때 피하는 것은 사랑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인생살이에서도 결혼식장에서 주례는 괴로울 때나 슬플 때나 즐거울 때나 사랑하겠느냐고 두 사람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원을 향해서 사는 사람들인데, 그리스도인으로서 다른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하며 사는 것과 아무 생각 없이 세월을 보내는 것에는 차이가 있습니다.“사랑의 빚 외에는”, 즉 ‘사랑하는 일 외에는’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칫하면 이 문제에 소홀할 수 있습니다. 다른 영혼들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영혼들에게 덕을 주기 위해서도 이 문제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예수께서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 13:34) 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물질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정신적으로나 그들 영혼을 위해 도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까? 혹시 ‘나만 편하면 된다, 나만 걱정 없으면 된다.’ 하며 자기 위주의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일 내 가족 대부분은 구원받았는데 다른 성도는 자기 가족이 전혀 구원받지 못해 안타까워하고 있다면, 나도 그 일에 합류하여 도울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혹 ‘자기 집 식구는 자기가 전도해야지. 사랑하는 형제자매라도 그 가족의 구원은 그 형제나 자매가 책임져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다른 사람의 가족들 중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있을 때, 우리도 발 벗고 나서서 도움을 주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었습니까? 혹시 무관심하고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저는 이 말씀을 보면, 왜 하필이면 하나님께서 사랑에 대한 말씀을 하시면서 돈과 연결시켜 빚진 사람의 태도로 살게끔 설명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모든 사람에 대해서 내가 빚진 자라고 한 것은 (롬 1:14 참조) 다른 영혼에 대한 책임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말씀을 보면서 율법을 지켜야 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힐 것이 아닙니다. 율법 속에는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고 한 계명들이 있지만,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마 19:19) 하셨던 이 말씀을 볼 때 다른 영혼들에 대한 사랑의 의무가 내게 있는지 없는지부터 생각해 보아야 됩니다.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불우한 일이나 불행을 보면 성금을 내서 돕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랑이라는 계명이 주어진 것에는 더 깊은 뜻이 있습니다. 구원받은 후에 구원받은 구절이나 믿은 시점만 기억하며 구원 하나 유지하느라 일생을 몸부림한다면, 그 사람은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라고 대답했던 사람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 사람은 예수께서 왜 내 은을 은행에 두지 아니하였느냐 물으셨을 때, 대답할 말이 없었습니다. 열 명이 똑같이 한 므나씩 받아 장사했을 때, 한 사람은 한 므나로 열 개를 남기고 다른 사람은 다섯 개를 남겼는데, 그 사람은 한 므나만 본전으로 수건에 싸서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눅 19:12-26 참조) 우리 각자도 구원받은 후에 생각의 차이로 인해 그렇게 되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로마서 13:8-10)
계명에 사랑이라는 것 하나를 더 붙여 놓으면 얼마나 무거운 것이 될지 생각해 보셨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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