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를 읽으면서 18회 마태복음 6:9-18, 누가복음 11:1-13 2001. 5. 19. 강연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태복음 6:9-18)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9절 말씀에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떤 말이 진행되는 중에 순서에 따라 이어지는 대로 “그러므로”라고 한 것이 아니라, 먼저 어떤 사실이 있고 ‘그 때문에’라는 의미로,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이 말씀 앞에는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5-8절) 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너희가 구하기 전에 너희 아버지께서 아신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될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이 땅 위에 복음이 전파되기 전, 이방인에게 아직 복음이 전해지지 않았을 때에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7절에서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고 하셨는데, 이방인과 같이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이때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순수한 유대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이방인’은 오늘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교인 아닌 사람을 향해서 말하는 ‘이방인’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국가적으로 이스라엘 사람이고 민족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예들이라고 자부하는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는 훗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내어 준 책임이 있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들, 하나님이 정하신 그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유대인 아닌 다른 민족을 본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방인과 같이”라는 말은 이방인과 함께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이방인이 하는 것처럼 많은 말을 하면서 부탁하는 식으로 기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말을 많이 하면 하나님이 들으실 줄 생각하는데, 그런 이방인 같은 행동은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8절에서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전에 이런저런 것을 부탁해야겠다고 하는 기도 목록을 적고서 ‘자녀가 잘 자라게 해 주십시오. 신랑 신부 잘 만나서 결혼 잘 하게 해 주십시오.’ 하며 간곡하게 기도합니다. 부인이라면 ‘남편이 직장에서 잘 되게 해 주십시오.’ 하고, 또 가장은 ‘우리 가정이 축복을 받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 축복 가운데 잘 살게 해 주십시오.’ 하는 등 여러 기도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런 이방인들이 가지고 있는 관심사, 만약 신이 있다면 그분께 부탁해야겠다는 것들을 하나님이 먼저 아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은 우리에게 있어야 할 참으로 가치 있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원하신다는 말입니다.그런데 우리는 인간사의 문제들 중 내가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나님 앞에 먼저 기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사람에게는 그런 것들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는 말씀은 사람이 구하기 전에, 사람이 필요한 것을 생각하기 전에,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먼저 아신다는 말씀입니다.어린아이가 자기 아버지 면도하는 모습을 보니 참 멋있게 보여서 저도 흉내를 내 보고 싶고 따라해 보고 싶다고 그 면도칼을 달라고 한다면, 아버지는 ‘아직은 안 돼. 나중에는 필요하겠지만 아직은 안 돼.’라고 할 것입니다. 아이가 요구하는 칼은 그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아이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면도칼이 아니라 아버지만큼 성장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자기 위주로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보다 내게 필요한 것이 앞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근심하게 하는 기도를 많이 합니다. 그러나 기도 이전에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그런데 세상에는 “그러므로 이렇게 기도하라” 하신 이 말씀을 ‘그러므로 이렇게 외우라’ 하신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너희는 이렇게 외우라’고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분명히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만일 이것이 외우라고 하는 문제였다면 큰 난리가 납니다. 누가가 기록한 내용 중에, 문장상으로는 짧지만 이 마태복음의 내용 가운데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서 보충 설명을 해 놓은 부분이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주기도문을 마태복음 6장 9절부터 13절까지 외우는 것으로 완전히 정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에게 주기도문을 외우라 하면 이 내용밖에 외우지 않습니다. 이것보다 더 짧은 누가복음 내용은 외울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그렇다면 누가복음의 내용이 틀린 것이겠습니까? ‘이렇게 외우라’ 하지 않으시고 “그러므로 이렇게 기도하라”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누가는 예수께서 기도하시는 것을 본 제자들이 예수께 자기들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는 내용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예수님이 기도를 마치셨을 때 제자 중 한 사람이 ‘주여. 세례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같이 우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부탁했습니다. 그 간곡한 부탁에 예수께서는 짧은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내용은 마태복음과 같은 내용으로 보이지만 판이하게 다릅니다. 빠진 내용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하라 (누가복음 11:1-4)
예수께서 가르치신 이 기도는 짧았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산상에서 하신 설교는 이것보다 길게 말씀하셨습니다. 흔히 주기도문이라고 외우는 마태복음 내용과 이 누가복음 내용 중에 어느 것이 맞다고 할 수 없습니다. 둘 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기도입니다.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살펴볼 것이 하나 있습니다. 마태복음에나 누가복음에나 이 기도문을 외우라는 말씀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암송하라는 어떠한 표현도 없습니다. 물론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주기도문을 외우는 사람도 많습니다. 저도 과거에 교회에서 주기도문을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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