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윤 | 서울
나는 대학 4학년, 졸업반 학생이다. 흔히들 생계 유지와 앞으로의 인생 설계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다는 시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 그런 이야기가 조금도 현실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는 인생 설계에 있어 조바심을 내거나 압박감에 시달리는 일은 없다. 내가 앞으로 나아갈 길이 주님과 함께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안 이후로, 사회와 나이가 때마다 가져다주는 ‘시기’라는 것의 압박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남들과는 조금 다른 대학 생활을 했다. 고고학이라는 전공을 택해 연구소에서 일하면서 조금 더 심층적인 연구조사에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난 2년 동안 학기 중이나 방학때도 쉴 틈 없이 발굴 작업과 공부를 병행해 왔다. 조사를 위해 낯선 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무슨 일 하세요?” 라는 질문을 받아서 “고고학 발굴 조사 다녀요.” 라고 대답을 하면 열이면 열 모두 감탄과 신기한 시선을 던졌으며, 그중 아홉은 ‘멋지다’고 했고, 그 중에서도 다섯은 ‘금도 캐요?’ 라고 물었다. 대부분 ‘고고학’이라고 하면 인디아나 존스를 떠올리고 성배와 같은 보물을 찾아다니는 보물 사냥꾼과 헷갈리거나, 그나마 조금 더 관심이 있다 해도 외국의 불가사의한 유적을 떠올리거나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보물들을 연상하곤 한다.
그러나 내가 현장을 돌아다니며 가장 많이 발굴했던 것은 다름 아닌 인골이었다. 해골, 아니면 사람의 뼈라고도 하는 그 인골은 발굴 조사의 단골손님이며 골칫거리이기도 하다. 한국의 토양은 산성이기 때문에 유기물의 부패가 빠른 편이지만, 묘의 조성 방식에 따라 인골이 남아 있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인골은 작업 진행상 중요하지 않은데도, 시간을 들여 조사를 하면서 뼈를 하나하나 그려줘야 하니, 발굴 현장의 애물단지나 다름없는 존재인 것이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옛 공동묘지 터라도 만나면 그야말로 고역이 아닐 수 없다.
흔히 ‘해골’의 이미지를 떠올릴 때는 공포감, 혐오감, 혹은 신기함 등을 말하곤 한다. 무덤을 판다는 것 자체가 괴기스럽다는 인상을 주고, 유령선의 해골을 떠올릴 때는 해골은 그다지 반가운 대상은 아닌 것이다. 발굴 현장에서 인골이 출토되면 대부분 좋게 생각하지는 않는 편인데도 조사 진행 후 인골을 향해 술을 부어주는 정도의 예의는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한번도 그런 의식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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