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리는 ‘로마서를 읽으면서’ 2000년 8월 5일 강연을 정리한 것입니다.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신명기 30:14)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10:5-15)
저는 이 내용을 여러 번 읽어 보았는데, 문장이 좀 어렵습니다. 우리말로 기록되어 있는데도 쉽게 읽히지 않고 하나하나 의문이 듭니다. 다른 성경 말씀들은 ‘그렇다, 그렇다.’ 하며 이해되는데 이 내용은 서두부터 딱딱하고 어렵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자세히 읽으면 그렇게 어려운 말씀은 아닙니다.앞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자기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자기 동족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저희가 구원 얻는 것이라고 한 내용을 읽었습니다. (롬 10:1 참조)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 얻는 것이 사도 바울 자신의 원이라고 했는데, 그런 사도 바울이 증거하기를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께 열심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롬 10:2) 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동족들, 즉 하나님께서 특별히 택하신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믿고 또 그렇게 역사를 이어와 놓고도, 열심은 대단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은 모자랐다고 했습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호 4:6) 하신 말씀대로,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지식을 배척하고 자기들이 만든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께 도전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 열심이 하나님의 의에 도전장을 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않았다고 했습니다. (롬 10:3 참조) 이 세상에는 많은 종교들이 있지만 어떤 종교인들도 유대인들의 종교적인 열성을 따라가기는 힘들 것입니다. 유대 민족은 그 열성이 참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열성이 아무리 커도 자기 의는 하나님의 의보다 크지 않으니 자기 의를 포기해야 하는데도, 자기 의를 앞세우다 보니 하나님의 의에 복종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자기 의와 하나님의 의가 충돌하자 스스로 하나님의 의에 도전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자기 의로 이겨보려고 노력한 것입니다.그래서 로마서 10장 4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율법이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후로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잘 지키려고 노력했지만 결국은 실패했습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는 이 율법을 범한 사람들,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사람들에게 율법의 요구 조건이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죄 없이 오셔서 인간을 대신해 율법의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율법의 저주를 받고 죽도록 내어준 예수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 인간이 무언가 잘못하여 죽는 그런 죽음과는 다릅니다. 예수님은 율법 아래서 나셨고 율법의 저주를 받은 바 되어, 율법의 요구 조건대로 죽으셨습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의 의가 완성되었습니다. 이는 인간에게 값없이 주어진 의였습니다. 인간은 그런 의를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오로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의롭다 하시기 위해서 이 모든 것을 하셨습니다.로마서 10장 1절부터 4절까지를 읽어보면 뒤에 나타나는 내용이 조금 쉽게 이해되실 것입니다.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이것은 율법이 끝나버렸다는 말은 아닙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던 그 당시에도 많은 유대인들은 율법을 행하기 위해 양을 잡아 제사를 드렸고 유월절도 지켰습니다.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그들이 계속 하나님 명령대로 율법을 지켜온 것은 성경 말씀대로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는 말씀을 이루기 위한 뜻이 있었습니다.그런데 스스로 죄를 생각하며 뉘우치는 마음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성경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바리새인과 세리가 성전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저 세리와 같지 아니합니다. 어떤 불의도 행하지 않았습니다.” 세리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바리새인의 기준에서 볼 때 세리는 형편없는 죄인이었습니다. 인간으로서 지을 수 있는 죄는 자연스레 짓고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세리와 함께 기도하며 바리새인은 “나는 저 세리와 같지 않습니다. 저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소득의 십일조도 바칩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눅 18:10-13 참조) 아주 정확하게 자기의 종교 생활을 그대로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오만 불손한 자세라기보다 자기가 하는 그대로를 이야기한 것입니다. 물론 예수께서 진단하시는 기준에서 보면 잘못된 것이지만, 그 시대 종교 지도자들의 입장에서는 이 바리새인의 생활은 아주 정확했습니다.오늘날에도 그럴 수 있습니다. 자기 기준에서 하나님을 똑똑히 잘 섬길 수 있습니다. 율법도 잘 준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보시는 기준은 다릅니다. 그런 식으로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들을 향해 예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마태복음 5:17)
그 시대 바리새인들은 외적으로 율법을 잘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기준은 달랐습니다. 율법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마태복음 5:21-22, 27-30)
그 시대 사람들은 율법을 외적으로만 잘 지켰지 내적인 것은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겉으로는 율법을 잘 지키는 것처럼 보여도 마음속에는 죄가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미움이 극에 달해 죽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외적으로는 창기를 비난하고 욕할 수 있는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런 여인을 보는 속마음이 어떠한지 하나님께서는 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고 겪은 여러 가지 사건들로 인해 마음속에서는 어떤 작용들이 일어났습니까? 사춘기 시절부터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 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우리는 잘 알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는 율법을 범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처해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사람이 율법을 외적으로는 잘 지키고 있을지라도 내적으로는 범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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