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미 | 캐나다 지난 성경탐구모임 때의 일입니다. 대강당에서 앞을 보며 말씀을 듣다가도 가슴이 벅차 가끔씩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누가 보면 왜 저 사람은 말씀 시간에 두리번거리나 할 정도로 뒤를 돌아보았는데, 대강당에서 제 뒤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여기 앉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나와 같은 경험을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들이구나. 믿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믿어진 나의 형제자매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 자리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정말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저는 구원받은 후로 지금까지 저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을 무척이나 찾고 또 찾았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저와 같은 경험을 한 줄 알았는데, 제가 만난 사람들은 제 간증을 알아듣지도 못했고, 듣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저는 저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 여러 곳을 찾다가 이 교제를 만났고, 결국 올해 여름에 한국에서 열린 성경탐구모임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간의 이야기들을 들려드리려 합니다.
거듭남을 알지 못했을 때저는 1988년에 남편을 만났습니다. 남편은 캐나다에 살고 있었는데, 서울 올림픽을 구경하고 결혼 상대자도 만날 겸 한국으로 여행을 왔다가 지인의 소개로 저를 만났습니다. 저는 그가 참 친절하고 착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고, 그와 결혼해서 6개월 후에 캐나다로 갔습니다. 저는 캐나다에서 아주 열심히 살았는데, 특히 자녀를 우상처럼 섬기며 키웠습니다. 아이를 열심히 공부시켜서 훌륭한 직업도 갖고 돈도 많이 벌게 하고 싶었습니다. 세상의 기준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키워야겠다는 욕심으로 아이를 키웠습니다.시간이 아까워 집에서 뿐 아니라 차 안에서도 학습지를 풀게 했고, 밖에 나갔다 집으로 들어갈 때면 아이들이 시켜 놓은 공부를 잘 하고 있는지 밖에서 확인하고, 놀고 있으면 훈계를 했습니다. 음식점에 가서도 음식을 주문한 후에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아이와 함께 수학 문제를 풀었습니다. 정답지가 있어도 보지 않고, 정답과 같은 답이 나올 때까지 풀다가 결국 음식은 포장해 집으로 가져온 적도 있습니다.그러면서 아이가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아이는 고등학생이 되자 폭죽을 분해하고 제조하는 일에 취미를 가지고 푹 빠져들었습니다. 하루는 폭죽을 크게 만들어 학교에 가져가 친구들에게 보여 주었는데, 라이터를 가지고 있던 친구가 거기에 불을 붙여 터트렸습니다. 그때는 9·11 사건 때문에 사회적으로 폭발, 알코올, 마약 등에 굉장히 민감한 시기였고, 그와 관련된 물건들이 학교에서 발견되면 바로 경찰서로 인계되었습니다. 학교에서 연락을 받고 가 보니 학교 주변에는 경찰 저지선이 둘러쳐 있었고, 아이는 경찰서로 연행되었다고 했습니다. 경찰서에 가보니 아이는 조사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미 열 손가락 지문을 다 찍고 범인 식별용 사진도 찍은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이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뉴스에 나왔고, 신문에는 늘어놓은 아이의 소지품을 찍은 사진도 실렸습니다. 당시에는 전화 소리만 울려도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로 신경이 예민해졌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의 공부만을 위해 열심을 내며 시간을 극도로 아끼며 살다 보니 남편과의 사이는 점점 멀어졌습니다. 정말 답답하고 힘들었습니다. 당시 저는 나처럼만 살아 보라지 하는 마음이었고, 당당하게 산다고 자부하고 있었기에 남편에 대해 못마땅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남편이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하니 악역은 내가 맡아야 하고, 나만 힘들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일이 터지고 나자 남편은 저에게 이혼을 하자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고개가 숙여졌지만 생각해 보니 ‘왜 내 생각은 해 주지 않지? 같은 배를 탔는데 어떻게 이혼을 하자고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에게 미안했고 제가 잘못을 하긴 했지만 남편이 자기 입장만 생각하는 것이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남편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졌습니다. 이혼을 하면 저는 캐나다를 떠나야 하는데, 한국에 돌아가 이혼했다고 하면 제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 신경이 쓰이기도 했습니다.저는 캐나다에 있으면서 가끔 교회에 다녔는데, 신앙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소통의 장으로, 또 아이들이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갖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교회에서는 복음에 대한 말씀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설교에는 아무런 결론이 없었습니다. 세미나도 아니고 인생 상담도 아니어서 저에게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힘든 상황이 되자 교회에서 들었던, 세상의 평안과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그 평안을 찾고 싶었습니다. 이혼을 하더라도 제가 살아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정말 힘들었습니다.저는 토론토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살았는데, 토론토에서 아이들의 여름방학 단기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차를 몰고 아이들과 함께 토론토로 갔고, 그 프로그램에 아이들을 참여시켰습니다. 6주 프로그램에 하루에 4-5시간 수업을 하는데, 저는 아이들이 수업을 받는 동안 그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싶었습니다. 제가 죽을 것 같았기에 성경 말씀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제게는 언니가 보내 준 주석 성경이 있었습니다. 두꺼웠고 한 번도 만지지 않아 금박이 번쩍번쩍하는 책이었습니다. 어디 가서 그 책을 읽을까 하다가 한 카페에 들어갔습니다. 구약 성경은 너무 지겨울 것 같아 읽지 않고 평안이 있다는 부분을 읽어 보면 좋겠는데 그 구절이 어디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부터 시작해서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을 읽었습니다.성경을 읽으며 세상이 주는 평안과 같지 않다는 평안을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편하기는커녕 점점 더 괴로웠습니다. 하나님이라는 대단한 분이 왜 나를 힘들게 하고 신경 쓰게 하는가, 나를 약 올리는 것인가, 그것이 재미있으신가 하며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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