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서를 읽으면서 8회, 마태복음 4:18-22, 마가복음 1:16-20, 누가복음 5:1-11, 2001. 2. 10. 강연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마태복음 4:18-22)
나를 따라오너라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 생각과 성경이 말하는 내용을 한 번 비교해 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세상에는 일찍 생애를 마치는 사람도 있고 오래 사는 사람도 있지만,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모두 한 번쯤 무언가 특별한 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내용 속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떤 심정으로 예수를 따랐을지 생각해 봅시다. 각자 생계를 이어 가던 사람들에게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나타나 자기를 따르라고 했을 때,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나를 따르라’고 하는 말에는 따르는 정도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냐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전쟁터에서 대장이 부하들을 인솔해 적진으로 돌진할 때도 있고, 지도자의 위치에서 사람들을 이끄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그런 일들이 엄청나게 많았고, 또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내용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은, 흔히들 생각하는 어떤 위인을 따라간다, 선배 누구를 따라간다, 선생님을 따라간다 하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이 내용은 인류 역사적으로 그냥 흘려 넘길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자들은 다른 사람을 인도하고 끌어가는 선구자의 부름에 응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나를 따라오너라” 하신 이 말에는 확실하게 ‘나’라고 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아주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끌어가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유명한 분인데, 부름 받은 이 제자들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수준이 너무 맞지 않습니다.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마태복음 4:18)
‘나를 따르라’고 할 수 있는 위대한 지도자라면, 그 부름을 받는 사람들의 자질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바다에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잡은 물고기를 팔아서 먹고 사는 대단치 않은 어부들에게 예수께서는 “나를 따라오너라”고 하셨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하려고 이 말씀을 하신 것이겠습니까?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마태복음 4:19-22)
예수께서는 “나를 따라오너라”고 하시며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말씀으로 답을 주셨습니다. 즉 ‘되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이 단순한 사람들은 자기 생계를 유지하던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랐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냥 보고 넘길 문제가 아닙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와서 우리 가정의 형제나 사촌 등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며 그들을 데려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책임을 질 수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예수를 따른 사람들은 인간적으로 보면 참 무책임합니다.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가 그 자리에 같이 있었다면 ‘왜 저 사람을 따라가느냐. 저 사람이 네 인생을 책임지겠느냐.’ 하며 막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부르심을 받아 예수를 따라간 이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기독교나 천주교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신 예수님과, 또 그 소리를 듣고 자기 생계를 버려두고 새로운 삶을 결정한 이들로 인해 지금의 기독교 역사가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이때의 이 부름은 보통 부름이 아니었습니다.예수께서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신 말씀은 언젠가 이 세상 끝에 완성될 것입니다.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버리느니라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태복음 13:47-50)
예수께서는 천국 복음을 전하면서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기독교 역사를 이루어 왔지만, 예수께서는 처음부터 ‘세상 끝’에 대하여 이야기하시며,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두 부류가 있다는 것과 역사의 마지막에는 이렇게 될 것임을 분명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역사의 시작 때에 예수께서는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이후 벌써 2천 년이 지났습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생각해 볼 때 제자들이 예수를 따른 삶은 실패한 것이었습니까? 제자들에게는 어떤 이득이 있었고, 또 이들은 어떠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갔습니까? 만일 이 사람들이 예수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고 이 부름에 서서 살아가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우리들은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이 성경을 붙잡고 볼 수 있는 기회도 없었을 것이고 예수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마 덧없이 인생을 살다가 마칠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벧후 2:12)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유나 목적 없이 났다는 말입니다. 이 말을 한 사람도 역시 물고기를 잡다가 부름을 받은 베드로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생애를 보면, 그는 소망에 관한 어떤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부르셨을 때, 그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내린 결단은 아주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그 결단은 그들 인생에 도움 될 것이 없는 실패한 결정이었습니다. 베드로는 3년 동안 예수를 따라다녔지만 훗날 다시 물고기를 잡으러 갈릴리로 갔기 때문입니다. (요 21장 참조) 하지만 다시 물고기를 잡고 있던 베드로에게 예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죽은 줄 알았던 그분이 나타나셨습니다.
이 의미심장한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꼭 필요합니다. 이 사람들이 받은 부름은 보통 부름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사회에서 하는 계약 관계 같은 것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일방적으로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신 그 말씀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것 같은 철저한 교육과정이 있던 것도 아닙니다. 약속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마가복음 1장 16절부터 20절까지 보겠습니다.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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