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북미지역 성경탐구모임 중 12월 28일 오후 강연
어제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낱말, “태초에”, “말씀”, “하나님”, “영생”, “시간이 시작되기 전”, “오래 전”, “창세 전”, “성경”, “생명”, “빛”, “죄”, “죄의 씻음” 등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 중 어떤 분들은 이 어휘들을 혼동할 수도 있고 이러한 여러 표현들에 대해 이상하게 여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제 우리는 요한복음 5장 39절을 읽었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구약의 몇 권을 통해 우리는 성경의 주요인물에 관해 찾아보고자 했습니다. 우리는 이 인물의 이름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한다고 합니다. 요한복음 1장에 씌어 있습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11-13)
하나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다시 말해서, 그런 사람에게는 또 한번의 기회, 즉 다른 의미의 생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믿는 이들에게 다시 한번 태어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십니다.
저는 때때로 자신이 거듭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언젠가 제가 과테말라에서 뉴욕으로 돌아오던 중 한 여성이 제 옆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제가 성경책을 읽고 있었는데, 제게 “기독교인이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예” 라고 대답했지요.
“거듭난 기독교인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제가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당신도 거듭난 기독교인이신가요?”
그녀가 “그렇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어떻게 거듭나셨습니까?”
“어느 날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어요.”
와! 저에게는 그런 일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꿈속에서 한 목소리를 들었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어느 날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고 결정했고 그때에 그들이 거듭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요한복음 3:8)
“그 소리를 들어도” 아마도 이 말씀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는다고 생각하는가 봅니다. 구약시대와 신약이 완성되어갈 시기에는, 하늘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듣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성경 속에 나오는 사람들뿐 아니라 성경책을 기록한 몇몇 사람들. 그러나 현재 우리 시대에는 성경이라 불리는 이 책을 통해서만이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거의 2천 년 전에 완성된 이 책 말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성경을 읽을 필요가 없지요.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성경을 상고한다는 말은 성경을 공부한다는 뜻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성경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면, 그것을 통해 여러분께서는 하나님께서 어떤 마음을 가지고 계시며 우리를 향해 어떤 사랑을 느끼시고 있는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제 디도서에서 읽었듯이 영생은 창세 전에 약속되어 있습니다. 또 어제 우리는 창조의 여러 면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태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을 창조하시기 전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과는 다른 하나님의 동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사야서나 에스겔서를 통해 보았습니다. 성경에서 “덮는 그룹”으로 표현된 루시퍼라는 이름의 한 천사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어. 나도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어. 영존하는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어.” 이 이유로 천사는 땅으로 쫓겨났고 하늘과 땅에는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창세기 1장 2절에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라고 씌어 있습니다. 이 구절은 참 이상하지요. 신약의 또 어떤 절에는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세상이 있습니다.
제 말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이라크에 갔다 오신 분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까? 이라크라는 나라가 있는지 어떻게 아십니까? 누가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었습니까? CNN이 가르쳐 주었지요. 맞습니까? 아니면 NBC, KBS. 아니면 Fox News. 이라크라는 땅에서 실제로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그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이라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여러분은 TV 스크린을 통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는지 우리가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태어나기전에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반영하여 보여주는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 2절을 보시겠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우리가 TV를 보면서 이라크에 전쟁이 벌어지고, 사람들이 죽고, 사담 후세인이 잡혔다는 것들을 알듯이, 세상에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아는 것은 그 무엇인가를 보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뉴스를 보면서 이라크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보도하는 기자들을 믿습니다. 그와 같이 성경 말씀을 처음 기록했던 사람들은 구약시대와 신약시대 초에 하나님으로부터 감동을 받아 그 감동에 따라서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각각 다 다르게 말입니다.
모세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1) 라고 기록했습니다. 이사야는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14:12) 라고 기록했고 에스겔서에는 “두로 왕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인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28:12)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2절에는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유대인의 조상들은 믿음을 통해 그들의 마음에 어떤 약속 또는 언약을 얻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보았고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이 아주 나이가 많았을 때, 가나안 땅으로 들어온 후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창 15:1) 하나님께서 여러분 앞에 나타나셔서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신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종교인들은 무릎을 꿇고 “오 주님.” 이라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뭐라고 말했습니까? “주님, 저에게 무엇을 주시려고 합니까? 저에게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저는 아들이 없습니다. 내가 엘리에셀을 다메섹에서 데리고 왔습니다. 그가 나의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당신이 무엇을 나에게 주실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 몸에서 한 아들이 태어날 것이다.” 아브라함은 그 말씀을 믿었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뭔가를 약속하셨고 아브라함이 그것을 단순히 믿었을 때 하나님은 그 믿음을 의로 보셨습니다. 바로 그것이 이 나이 많은 사람이 백세의 나이에 아들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였습니다. 그의 아내가 죽은 후 그는 다시 결혼해서 더 많은 자녀를 얻었습니다.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라크라는 나라가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호주, 영국, 독일이라는 나라가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실상 그곳에 가보지 못했더라도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런 장소에 대해 쓰고, 지도를 만들고 그곳에 대해 TV에 보도하고 신문에 기사를 쓴 사람들을 믿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증거는 무엇입니까? 이라크라는 나라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믿습니까?
“글쎄요, CNN.”
사담 후세인이 붙잡혔다는 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조지 부시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셨다는 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저는 어떻게 알까요? 모세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바울도, 욥도, 솔로몬도 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같은 영으로부터 감동을 받았습니다.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우리 육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너는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었도다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 (에스겔 28:14-15)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이사야 14:13)
이 사건의 결과,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여러분은 베드로후서 3장 5, 6, 7절에서 지구가 물로 넘쳤었다는 것을 보셨습니다. 물이 지구를 덮었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창세기 1:2)
창세기에는 당시 지구의 혼돈 상태가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은 또한 인간의 영적 상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어떤 어두움이 있었고 이 물의 형태 안에 검은 힘이 갇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그리고 이야기는 빛으로 전개됩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창세기 1:3-5)
우리는 영생에 대해 이야기하곤 합니다. 하늘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하늘에 있는 무엇인가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압니까? 단지 여러분들이 무엇인가를 믿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우리가 믿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요. 고린도후서 4장 18절을 보시겠습니다.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여기서 바울이 영원에 대해 언급할 때 실제로 존재하는 것에 대해 논하고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저 상상의 것을 논하고 있는 것입니까? 어느 쪽이지요? 그는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라고. 우리가 전도서에서 읽을 수 있듯이,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1:2-3)
지금 우리들이 볼 수 있는 것들은 잠깐입니다. 우리가 상상하고 또 만질 수 있는 것들, 해, 달 그리고 이 땅, 이러한 것들 말입니다. 이런 것들은 일시적인 것들입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들은 영원한 것입니다. 로마서에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그의 만드신 만물을 통해서 그의 보이지 않는 신성이 분명히 보인다고 했습니다. 보이는 것들을 통해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들을 통해서, 우리는 영원한 것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영원한 것들은 실질적으로 존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사야서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55:9)
이것을 믿든 믿지 않든 그것은 여러분 자유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입니다. 모두 사라집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디도서에서 우리는 시간이 시작되었던 순간이 있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계획된 역사의 시간이 끝나면, 이 우주 전체는 영원한 나라라 불리는 새로운 시간, 새로운 세계 속으로 들어갑니다. 지금은 우리가 볼 수 없는 세상 말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하나님 세계의 것, 즉 그의 영원한 세상 안에 있는, 지금은 볼 수 없는 그의 영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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