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은
미국과 멕시코 접경 지역 이글패스에 떨어진 복음의 씨는 인근 멕시코 지역 나바로 번져갔다. 거기서 말씀을 받은 사람들은 그들의 고향 쿠엔카메로, 마사틀란으로, 토레온으로 그들의 부모와 형제들에게 말씀을 전했다. 한 사람에게 이어진 생명이 멕시코 중부를 통과해서 남부에로 이어져가는 가운데, 주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고 전진하고 있다.
지나간 기독교 역사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성경의 감화가 가장 강력하게 일어났을 때 복음도 활발하게 전해졌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도들의 믿음을 굳건히 세우고, 나아가 주님께 자신을 드려 헌신할 사람으로 만들어가게 했다. 여기 멕시코로 복음이 전파되었던 10 여년을 살펴보아도 이런 사실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는 그리스도의 피의 효능이 어떠한가를 밝히는 설교가 죽 이어져왔다. 이로 인해 성도들이 일깨워지는 일들이 근래 몇 년간 계속되었고, 보혈의 능력을 실감한 성도들의 숫자는 나날이 늘어갔다. 이런 변화는 성도들의 교제와 각 부분의 역할을 활성화시켰고 또 해외로의 활발한 복음전파가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왔다.
그 가운데 말씀을 기쁨으로 받은 젊은이들의 숫자가 늘어난 일은 근래의 특이한 변화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실제 복음 전도의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고, 계속적으로 그 숫자는 불어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우리에게 복음의 미래가 얼마나 밝은가를 약속해 주는 듯하다. 시편 127편에 약속된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는 말씀처럼, 장사가 자기 전통에 화살을 가득 가지고 전진하는 것 같은 든든함이, 말씀을 전함에 부지런하여 끊임없이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우리 가운데 존재한다.
우리 가운데 말씀이 이처럼 풍부한 것은 잃은바 된 영혼들에게는 하나님을 만날 기회를 제공하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생활 속에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전한 멕시코 복음의 역사를 두 번째로 다룸에 있어, 멕시코에 복음이 전해지던 시기가 성도들 간에 말씀을 상고하는 일이 활발하던 때였음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중미지역 성경탐구모임이 올해 4회째 이르렀고, 쉴 새 없이 각 지역에 복음이 전해져 전도지에 거주하기 위해 집을 마련한 곳이 많아지고 미국과 한국에서 선교 일을 맡을 형제자매들이 파견되었다. 또 많은 국내외 형제자매들이 전도집회 기간에 멕시코를 방문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풍성함을 확인하고 은혜로 큰 위로를 얻었다.
나바에서 쿠엔카메로, 마사틀란으로, 토레온 등지로 전개된 복음의 경로를 따라 그 주요 인물들이 겪은 활동의 맥을 간략하게 짚어본다.
쿠엔카메 | 문춘실
2000년 3월 17일부터 26일까지 열흘간 쿠엔카메에서 열릴 예정인 성경탐구모임에 참가하기 위해 3월 16일 아침 일찍 LA 공항에서, 한국과 미주 형제자매 20명과 함께 멕시코에서 4번째로 큰 도시인 토레온으로 향했다. 우리가 가져가는 가방마다 밑반찬과 쌀 그 밖의 먹을 것들과 접시, 숟가락, 밥솥까지 모든 것을 신혼살림 차리듯이 준비해서 담았기에 짐 부치는 일만 해도 큰일이었다.
도중에 두랑고에서 모두 내려 입국수속을 마치고 4명이 환전을 했다. 집회 때에 쓸 돈이었는데 멕시코에서는 너무 큰돈이라서 환전소에서 돈을 전부 구할 수가 없었다. 다른 곳에서 가져오는 사이에, 빨리 비행기에 타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비행기 문이 닫히기 직전에 가까스로 비행기에 올라탔다. 토레온 공항에는 무장한 군인들과 군견들이 비행기를 둘러싸고 있었다. 환전하던 공항에서 미리 보고를 했던 모양이다. 우리가 큰돈을 바꾸니까, 마약 장사로 착각을 했을 수도 있었겠다. 쿠엔카메는 마약의 집산지라고 한다.
차를 타고 다시 2시간 정도 달려서 드디어 쿠엔카메의 산티아고 형제님 댁에 도착하니 밤 11시. 산티아고 할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찾아갔는데 그곳에 신 자매가 미리 와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다고 ‘또띠아’를 충분히 준비했다는데, 한국에서 워낙 많은 사람들이 갔고 멕시코 사람들도 와서 턱없이 모자랐다. 적은 양을 서로 나누어 먹은 후 모텔로 이동하여 10개의 방 모두를 전세 내어 멕시코에서의 첫 밤을 보냈다. 제일 좋은 호텔이라며 갔는데 시설이 형편없었다. 바닥은 콘크리트에, 닭장같이 각자 하나씩 문이 달려있고 방에 들어가는 길도 흙길이었다. 내부에 난방 시설이 없어서 말할 수 없이 추웠다. 퀴퀴한 이불 냄새, 차가운 공기와 더불어 새우잠을 자고 일어나니 배가 엄청 고팠다.
다음날 오전 11시 30분 멕시코와 한국인 형제자매들이 함께 모여 박미나 자매의 통역으로 서로 인사를 나눈 후에 집회 준비에 대해 의논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곳의 형제자매들은 집회를 알리는 전도지 800장을 돌렸다고 하는데, 확실히 올 사람은 200명 정도이고 참석하는 모든 분들에게는 식사를 제공하겠다는 광고도 했다고 한다. 산티아고 할아버지는 “여러분은 말씀에 의지해서 그물을 던졌으니까 주님께서 거두실 것입니다” 라고 말씀하셔서 모두로부터 힘찬 박수를 받았다. 인자한 미소에 소박한 모습이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할아버지와 같은 인상이었기에 이국인이라는 생소한 느낌보다는 친근함을 느꼈고, 순수한 마음이 아주 귀하게 생각되는 형제였다.
식당과 교제 장소로 쓰기 위해 레스토랑을 빌렸다. 그런데 팔십 인분의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부엌에 가서 보니, 가스레인지가 하나뿐이었다. 세숫대야 크기만한 싱크대도 하나고, 수돗물은 졸졸 조금씩만 나왔다. 물이 귀한 지역이라 그렇게 나오는 수돗물도 이틀 걸러 하루씩 나온다고 했다. 화장실에도 물탱크에 물을 미리 받아놓아야 했다. 환경이 그렇다 보니 설거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았다. 그래서 일회용품을 가져다가 쓰고 버리고, 밑반찬 가져온 것을 먹으면서 국만 끓이기로 했다.멕시코 자매들이 먼지가 잔뜩 묻은 피망을 씻지도 않고 썰어서 요리를 하려고 해서 우리가 씻는 것을 가르치고 과일 같은 것도 모양 좋게 자르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우리가 먼저 하면 옆에서 멕시코 자매들이 그대로 따라 하면서 배웠다.
대구에서 오신 엄마 둘이 국 끓이는 당번을 하던 중에 일어난 폭소 사건이 있었다. 스페인어를 단 한마디도 모르는 가운데 멕시코 자매들과 함께 음식을 준비하는데 급하다 보니 등을 두드리며 손짓 발짓으로 감자를 깎아달라는 시늉을 하니까, 멕시코 자매들이 ‘빠빠스’ 라고 말했다. 그러자 이 대구 엄마는 순간 ‘바빠서’라고 이해하고 경상도 말로 ‘느그만 바뻐? 우리도 바쁘데이.’ 라고 대답했다. 같이 일하던 자매들 모두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빠빠스’는 스페인 말로 감자였던 것이다. 말이 안 통하니까 이런 일도 생긴다.
루이스 모르케다라는 형제가 나바에서 왔는데, 청소를 열심히 했다. 그 형제가 남자 화장실을 청소하고 그 외에는 다들 청소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한국이나 미국에서 온 우리들도 뒷정리를 할 줄 모르는 상태였다. 그 때 사모님은 구질구질 곳만 찾아다니시면서 청소를 하셨다. 주위에 안 계셔서 찾아보면 화장실 청소를 하고 계셨다. 우리도 같이 하려 했으나 청소 도구가 없어서 정말 난감했다. 처음에는 다 갖춰져 있었는데 멕시코 사람들이 다 가져가버린 것이다. 화장실의 물탱크 뚜껑, 휴지와 수도꼭지까지 없어졌다. 격일제로 물이 나오니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한 번은 화장실에 가서 변기에 앉다가 물에 퐁당 빠져버렸다. 누가 토일렛 시트를 가져가버린 것이다. 전쟁의 폐허에 내가 왔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다.
오후 7시 집회 시작! 쿠엔카메에서 제일 크다는 시민회관 비슷한 곳을 빌려 스페인어로 번역된 권 목사님의 성경 강연 비디오테이프를 들으며 첫 집회를 시작했다. 동네잔치가 벌어진 듯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성인 24명과 미성년자 40명 정도가 참석했는데 미성년자들이 많아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이곳에는 10대 초반에 결혼한 사람이 많아서 아이들도 아이들 같은 순수한 눈빛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처음 전해질 때, 외국인 선교사들이 지금 우리들보다 훨씬 더 열악한 환경에서 알지도 못하는 외국어로 목숨을 바쳐가며 전한 그 복음이 내게까지 전해진 것을 생각하니 목이 메어 찬송가를 부를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곳은 수세식 화장실에, 침대에, 신앙의 자유도 있고, 멕시코 음식에도 비교적 익숙하고 모든 환경이 그때와 비교도 할 수 없이 좋은데 그때 그 분들이 겪어야 했을 고충은 얼마나 컸을까.
다음 날에는 성인들의 숫자가 60명으로 늘었다.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태도도 많이 진지해졌다. 설교가 끝났을 때 산티아고 형제님은 이 많은 분들이 오셔서 이렇게 좋은 말씀을 들려주시는데 생각보다 참석 인원이 적어서 미안하다 하셨다. 로사 자매는 저녁마다 집회 장소에서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친구의 집에 가서 친구를 데려오느라 수고가 많다. 주방에서는 없는 재료에 음식을 마련하느라 고심이 많았는데, 그나마 몇 단어라도 구사하는 신전수 자매가 시장에라도 가고 나면 손짓 발짓으로 의사 표시를 하느라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다. 바벨 탑을 쌓던 시대에도 이런 법석을 떠느라 절대로 탑 쌓는 일을 계속 할 수 없었겠다 싶었다. 쿠엔카메와 미국 국경지대에 있는 나바 시와는 차로 9시간 거리인데, 그곳에서 후안 호세 부부, 프란시스카, 실비아, 글로리아, 로사 자매와 루이스 형제, 후안 데 레온 형제 등이 자기 일도 제쳐두고 내려와서 함께 숙식하며 열심히 봉사하느라 나머지 나바 집에 남아있는 형제들끼리 함께 저녁 식사를 돌아가며 준비한다 해서 모두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집회가 끝나고 나니 구원받은 사람들이 생겼다. 일곱 명에게 간증을 시켰는데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여섯 명이 아주 똑똑한 간증을 했다. 간증을 하지 않았던 두 명도 부끄러워서 강당에서는 못했다면서 나중에 식당에서 간증을 했다.
저녁 집회 때에는 폴린 자매와 산티아고 할아버지가 간증하셨다. 산티아고 할아버지는 이웃과 친척에게 복음 이야기를 하면 다들 미쳤다고 하지만 그래도 구원받은 것이 정말 감사하고, 누구든지 말씀을 듣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자기 집에 오게 해서 비디오테이프를 보여주겠다고 하셨다. 구원받으면 피부색과 나이에 상관없이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똑같아지는 것이 새삼 신기했다. 김태 형제님의 말씀으로 전도 집회를 총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집회에서 구원받은 사람 12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이엘라 자매는 첼라라는 친구를 데려왔는데 이번에 구원받았다. 첼라는 목요일 아침부터 죄가 많다고 울고불고 야단이더니 상담을 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고는 정확한 간증을 했다.
마지막 날, 수영장을 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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