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사도행전 15:1-11, 1999. 8. 7 강연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저희가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녀가며 이방인들의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하시고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사도행전 15:1-11)
유대로부터 온 어떤 사람들의 다른 가르침사도행전 15장의 일은 기독교 역사에 한 번은 꼭 있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이 있었기에 기독교 역사 속에서 복음도 참된 것과 거짓 것이 완전히 구별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중요한 사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때 있었던 다툼과 변론은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고 기독교 역사 속에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성경 내용을 통해서 지금 우리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 우리가 어떤 상태로 믿음 위에 서 있는지 더듬어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읽다 보면 ‘교회’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이 ‘교회’라는 말은 오늘날 사람들이 흔히들 쓰는 교회라는 말보다 훨씬 더 중요한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사람들이 만든 조직이나 배경에 대한 내용보다는, 매우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그리스도인들끼리 모여 머리를 맞대고 상의하며 참된 진리가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옵니다. 사도행전 15장에서도 율법과 은혜에 대해 말하면서 그 가운데 교회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예배당이나 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형제들을 일컫는 말이라는 것이 그 내용을 통해 뚜렷이 드러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2천 년 역사를 살펴보면 ‘교회’에 대한 논란이 있을 때마다 교회는 건물이나 예배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매우 중요시했는데 예수님은 그 성전을 보고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요 2:19)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성소의 휘장 한 가운데가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찢어짐으로써 (눅 23:45 참조) 구시대의 것들은 끝나고 새것이 왔는데도 그들은 옛것이 좋다고 뒷걸음쳐 물러갔습니다. 오늘날에도 은연중에 유대인들이 섬기는 거룩한 성전의 개념을 ‘교회’의 개념과 연관시키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성경에서 가르치는 것과는 차이가 있는 주장입니다.사도행전 15장 1절부터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이 말씀에서 ‘어떤 사람들’은 ‘형제들’과 구별되어 있습니다. ‘어떤 형제들’이 내려와서 가르친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이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쳤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믿음의 문을 여셔서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함께 교제를 가지고 있었는데, 어떤 이들이 와서 그들에게 잘못된 교리를 가르친 것입니다. 이들이 누구인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그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왔다는 것으로 보아 신령해 보이고 힘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이 유대 땅으로부터 전해져 왔고 또 사도들도 유대로부터 왔기 때문에 유대에서 먼 안디옥에 있는 이방인들에게 있어서 유대는 동경의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유대에서 온 소위 선생이라는 사람들이 구원받은 형제들에게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두 사도가 엄연히 그곳에서 형제들과 오랫동안 교제를 가지고 있었는데도 ‘어떤 사람들’이 파고 들어와서 엉뚱한 교훈을 가르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훗날 그런 사람들을 두고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고후 11:13) 고 했습니다. 상당히 울분에 차 있는 바울의 그런 말씀들을 우리는 그의 서신 속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유대로부터 온 이 ‘어떤 사람들’은 사도들로부터 형제라든지 사도라든지 교사라든지 하는 명칭을 얻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누구인지는 성경에 전혀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행한 일들을 보면 성경을 전하는 사람들이었음에도 성경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형제들을 가르칠 만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날도 이때와 마찬가지로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을 전하기만 하면 모두 선생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어떤 종교보다도 기독교는 정확한 말씀이 잘못된 교리에 대해 무방비 상태로 크게 구멍이 뚫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어떤 사람들’은 엉뚱한 교리를 주장했습니다. 그들이 형제들에게 가르친 할례가 무엇입니까?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태어난 지 팔 일 만에 행하는 유대인의 예식으로써 요즘 용어로 말하면 포경수술입니다. 이는 모세의 율법에도 명시되어 있지만, 율법이 있기 훨씬 이전에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창세기 34장에 보면 히위 족속의 아들 세겜이 야곱의 딸 디나를 강간하고 그를 연모하여 구혼했다가 그의 족속 남자들 모두가 야곱의 두 아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세겜을 속여 그 족속 남자들로 하여금 할례를 받게 했고 할례를 행한 지 삼 일 후에 그들이 심한 고통 중에 있을 때 습격하여 그들을 모두 죽여 버렸습니다. 이 일은 모세의 율법이 있기 수백 년 전에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언젠가 이탈리아에 갔을 때 대리석으로 만든 다윗 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다윗이 벌거벗은 채 손에 돌을 쥐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그 조각을 보면서 그것은 성경을 모르는 사람이 만든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다윗 상에는 할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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