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을 읽으면서, 사도행전 13:41-52, 1999. 7. 10 강연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이를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저희가 나갈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폐회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좇으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성이 거의 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의 말한 것을 변박하고 비방하거늘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케 하여 그 지경에서 쫓아내니 두 사람이 저희를 향하여 발에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사도행전 13:41-52)
성경을 철저히 살펴야 하는 이유사도행전 13장에는 아주 중요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48절의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는 말씀이 마음속에 걸림이 되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는 사람도 가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내용을 더욱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 구절에는 기록된 내용 그대로의 의미뿐 아니라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구절에서 영혼의 발걸음에 제동이 걸립니다. 사도행전에는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7:11) 라는 말씀이 있는데, 우리도 베뢰아 사람들처럼 다른 성경 내용들과 비추어 보면서 말씀을 정확하게 구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성경에는 48절과 같이 하나님 나라에 가기로 예정된 사람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말씀들이 여러 군데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에 넘어지면 안 됩니다. 마귀는 성경 읽는 사람들을 말씀에 걸려 넘어지게 해서 지옥으로 보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시험할 때도 성경 말씀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자세히 살펴서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세상에 태어난 인간 중에 어느 누구도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하는 사람이라서 영생 주시기로 작정된 사람은 없습니다. 자신에게 영생 주시기로 작정되었다는 것을 알고서 영생을 얻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든, 성경 말씀을 통해서 영생을 얻었다고 믿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마태복음 13:16-17)
또 예수님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누가복음 10:21)
이 말씀에서 어린아이는 육신적인 아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어린 사람들, 영혼이 순수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 18:3 고 하신 것처럼, 어린아이처럼 영혼의 자세가 낮아질 대로 낮아진 사람만이 주님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3:16)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히 믿었을 때 얻는 것입니다. 본인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사람인 것을 알았다든지, 영생 주시기로 작정되었다는 것을 확신한다고 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예정’이라든지 ‘택정’이라는 말이 나오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며 자신이 예수를 믿기로 예정되어 있었다는 착각에 빠집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예정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고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예정’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의 예정’을 말합니다. 아담을 비롯한 인류는 창세 후에 만들어졌습니다. 창세 전에 예정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아들의 형태로 한 몸을 이 세상에 남기기 위해서 예정하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입니다. 우리 개개인들은 아담의 자손이요, 죄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예정’, ‘택정’이라는 말이 나오면 그 말에 스스로를 적용시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뒷전으로 물러가 버립니다.
성경을 읽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앞에 세우지 않고서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시기 전에는 택한 민족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불순종했다면 택한 민족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아담은 불순종했지만 아브라함은 순종했습니다. 아담 이후 인류 역사가 흐르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필요할 때마다 한 사람씩 택하셨습니다. 그렇게 택함을 받은 이들은 에녹이나 노아, 아브라함 같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아담이 범죄한 것과 같은 실패를 답습하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창 12:1) 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그 말씀에 순종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셨고,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했고, 그의 아들 이삭과 또 그의 아들 야곱이 순종함으로 인해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택함을 받은 내용을 우리는 구약 성경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 민족은 자기들이 택하심을 입었다고 자부합니다.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유대인 개개인을 향해서는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마태복음 3:8-9)
개개인은 언젠가 하나님께로 돌아서야만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가나안 땅에 들어갔듯이 말입니다. 유대 민족이 가나안 땅으로 가기 위해 애굽에서 나올 때 각 사람이 각 가족대로 자기 식구를 위해 어린 양을 잡아 그 고기를 먹고 그 피를 문인방에 발랐듯이 말입니다. (출 12:1-10 참조) 이러한 것들은 훗날 태어날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 민족을 통해 준비하고 미리 보여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사도행전 13장을 공부할 때 유심히 살펴보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는 말씀을 읽을 때는 그 앞에 있는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하는 구절도 참작해야 합니다. 한쪽은 받아들임으로써 영생을 얻었고, 한쪽은 거절함으로써 버림을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이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여 영생이 이방인에게로 넘어간다는 것을 사도들은 말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에게는 이 상반된 두 구절을 생각해 볼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의로써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이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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