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 다빗 | 베트남
저는 1955년에 베트남에서 태어났습니다. 제가 태어날 무렵 베트남은 독립전쟁 중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베트민이라고 불리는 공산군에 소속되어 참전하셨다가, 임신 3개월인 어머니를 남겨 두고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저를 낳으실 때 주위에 어머니가 출산하는 것을 도울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당시 베트남의 생활수준은 매우 낙후되어 제대로 된 병원이없었습니다. 돈을 주면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겠지만 어머니는 돈이 전혀 없었기에 홀로 저를 낳으셔야 했습니다.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제가 태어나면서 장님이 된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합니다. 보이지 않는 제 눈을 낫게 하기 위해 어머니께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고, 그렇게 저를 네 살 때까지 키우셨습니다.
그 당시 베트남에는 안전하다고 여겨질 만한 장소가 없었습니다. 군인들이 권력을 잡고 있었는데, 밤낮으로 정권이 바뀌어 낮에는 사이공 정권이, 밤이면 공산군이 권력을 잡았습니다. 하루는 공산군이 저희 집을 포함한 마을의 모든 집들을 불태웠습니다. 그때 저는 네 살이었는데, 잿더미에서 놀고 있던 저를 한 영국인이 안아 올렸습니다. 선교사이자 의사인 스튜어드 하버슨 씨였습니다. 그분은 저를 보고 소리치며 눈물을 흘렸고, 저를 즉시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저를 개원한 지 한두 달밖에 안 된 고아원에 입소시켰습니다. 제가 고아원에 있는 동안 어머니가 저를 찾으러 오셨는데, 하버슨 선교사는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고아원에 머물면서 저와 다른 고아들을 돌볼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저는 고아원에서 다른 고아들이 공부를 하는 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앞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그냥 돌아다닐 뿐이었습니다. 하버슨 선교사는 그런 저를 위해 출생증명서를 꾸며 여권을 만들어 주었고, 홍콩과 말레이시아 등지에 맹인이 공부할 수 있는 곳이 있는지 수소문했습니다. 그리고 1967년에 말레이시아에 있는 성 니콜라스 학교에 저를 보내 주었습니다.저는 1967년부터 1974년 말까지 말레이시아에서 공부를 하고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왔습니다. 시험 성적이 아주 좋아 모든 교과 과정을 전교 2등으로 수료했습니다. 말레이시아로 돌아가 공부를 계속하고 싶은 열망이 아주 컸지만, 제가 베트남에 돌아왔을 때 국방부와 교육부에서는 제가 또다시 말레이시아로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곧 정권이 바뀔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말레이시아에서 학교를 다니는 동안 성경 공부를 했는데, 성경을 공부하는 것이 정말 좋았습니다. 주일 학교에서도 항상 좋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말레이시아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을 때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은 왜 내게 이런 일을 행하시는가? 처음에는 공부할 기회를 주셔 놓고는 왜 지금 와서 그것을 빼앗아 가시는가?’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
| 정회원으로 가입하시면 전체기사와 사진(동영상)을 보실수 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