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를 읽으면서’ - 2000년 4월 16일 강연
이 소리는 ‘로마서를 읽으면서’ 2000년 4월 16일 강연을 정리한 것입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로마서 8:11)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우리도 위함이니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로마서 5:1-11)
이 말씀은 어떻게 보면 읽기도 편하고 아주 쉬운 내용 같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을 집중하고 마음을 가다듬어서 보면 무언가 마음에서 건져지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아, 이래서 하나님께서 비슷한 말씀을 재차 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1절)
여기 “그러므로”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러이러했기에 ‘그러므로’, 이렇게 이어지는 말입니다. 로마서 3장과 4장도 이와 마찬가지로, 어떠한 설명을 하고는 ‘그러므로’, ‘그런즉’ 하는 말로 이어졌습니다. 4장 끝부분부터 살펴보고 5장 1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로마서 4:23-5:1)
아브라함은 행위로서나 율법을 지켰다거나 자기의 의로서가 아니라 그저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여김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우리도 위함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4장은 아브라함이 의롭게 여김을 받은 것은 할례를 받기 이전의 일이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할례는 아브라함이 유대인의 조상으로서 치른 첫 의식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 할례 의식을 치르기 전에 이미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아브라함의 후손들만 위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할례 받기 이전의 것을 믿는 사람들까지도 위함입니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은 후 이삭을 낳았고, 그 가정에 전통이 이어지며 유대 민족의 역사가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후손이 있기 전에 벌써, 바랄 수 없는 중에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으로 무할례 시에 아브라함은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할례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즉 아브라함의 전통, 유대인의 전통, 이스라엘의 전통을 잇지 않았다 해도 믿음으로 함께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것이 로마서 4장의 내용입니다. 의롭게 된다는 것은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린 그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뿐 아니라 우리 죄 때문에 예수를 죽음에 내주어 죽음을 맛보게 하시고, 죽으셨던 그분을 다시 살리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내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쓰고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육체로는 사람의 모양으로 오신 그분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요 14:9 이라고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분이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위해서 인간의 몸을 쓰고 죽음을 맛보러 오셨던 것입니다. (히 2:9 참조)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는 우리 모두도 위함입니다. 아브라함만 위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25절에,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내버려졌다, 죽도록 내어주었다.’는 말입니다.창세기 2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모처럼 아들을 얻어서 애지중지 키웠는데, 외동아들이며 상속자,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을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건이 성경에는 단순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산으로 간 후, 제삼일에 그 산을 아브라함은 멀리서 바라보았습니다. 함께 간 종들은 산 아래 두고 아들에게 나뭇짐을 지우고 산에 올라갑니다.
그 아들이 가면서 ‘모든 준비는 다 되었는데 왜 제사 드릴 어린 양이 없습니까?’ 하고 물으니,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시리라는 대답을 해 줍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칼로 아들을 죽여야만 합니다. 얼마나 아슬아슬한 장면인지요.
우리 개인이 그런 일을 당한다면 얼마나 슬프고 원통하겠습니까? 보통 사람 같으면 ‘아예 처음부터 주지 마시지, 무엇 때문에 약속해 놓고 빼앗아 가십니까?’라고 한마디라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런 가운데서도 바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가 이삭을 죽이려는 찰나 하나님께서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하셨습니다. 죽음을 멈추어 주셨습니다. 나무 사이에 다른 양이 준비되어 있었고 그것이 제단에 대신 바쳐졌습니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나, 지금으로부터 약 2천 년 전 예수님과 유대인들 사이에 심한 다툼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셨을 때 유대인들은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랬을 때 예수님은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라며 이야기를 죽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이야기에 유대인들은 자기 아버지가 아브라함이라 했다가 하나님이라 했다가 하며 이리저리 피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말에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하며 하나하나 지적해 주셨습니다. (요 8장 참조)
그런 논쟁을 하는 중에 예수님은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고, 그 옛날 아브라함이 예수의 때의 것을 보고 즐거워했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네가 아직 오십도 못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고 따지자, 예수님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있었느니라’가 아니라,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영원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항상 살아 계신 분이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완전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당당하게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계셨는지 한번 살펴봅시다. 창세기 22장 1절부터 보겠습니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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