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숙 | 인천
1975년 5월 6일은 내가 구원받은 날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구원받았다고 알고 있던 날이다. 그때부터 작년 10월까지 33년 동안 나는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나는 1941년 강원도 철원에서 공무원인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의 1남 4녀 중 셋째 딸로 태어났고, 해방을 맞으며 가족과 함께 남부 지역으로 피난을 와 부산과 진주에서 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23살에 대전에 종갓집의 종부로 시집을 왔다.
대가족이었던 시댁에서는 여덟 번의 제사와, 설과 추석의 명절 차례를 합하여 일 년에 열 번의 제사를 지냈고, 종부였던 나는 성심껏 제사상을 준비했다. 제삿날만 되면 친척들이 제사를 지내기 위해 모여들어 그 큰 한옥 집이 친척들로 북적였다. 관습대로 차려입은 종가 어른들이 제사를 지낼 때면 나는 돌아가신 조상님께 바칠 음식을 정성껏 준비했다. 그것이 종부로서의 도리라고 믿고 힘든 줄 모르고 살았다. 그렇게 종갓집의 종부로, 1남 4녀의 자녀를 둔 어머니로 살던 내가 하나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신앙촌의 간장 총판을 하면서부터다.
1969년 잡화점을 운영하고 있던 내게, 신앙촌의 전도관을 다니던 점원이 신앙촌의 간장 총판을 하면 어떠냐고 제안해왔다. 그 당시 신앙촌 물건은 아주 인기가 많았던 터라 선뜻 승낙을 하고 간장 총판을 시작했다. 총판을 시작한 후 물건을 주문하기 위해 매주 화요일마다 대전에서 경기도 덕소까지 오가던 중, 전도관에서 성경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불교 집안이었던 시댁 어른 몰래 새벽기도까지 다니며 믿음을 키웠다.
일 년을 몰래 전도관에 다녔는데,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되신 시댁에서는 집안 망한다며 난리가 났다. 불교 집안에서 종부가 예수를 믿으면 안 된다며 전도관에 다니지 못하게 반대하시던 차에, 돌이 된 넷째 딸이 심한 병을 앓게 되었다. 아이는 병명도 모른 채 죽어가는 것 같았다. 시댁에서는 내가 예수를 믿어서 아이가 죽어가는 것이라 하였고 어쩔 수 없이 나는 전도관을 나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신앙촌 간장 총판도 그만두었다. 그런 뒤 다행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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