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12 - 2006년 8월 19일 강연
이 강연은 ‘태초에’ 2006년 8월 19일 강연을 정리한 것입니다.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창세기 3:8-9)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창세기 3:6-13)
우리는 자칫 잘못하면 이 내용을 쉽게 지나칠 수 있습니다. 이 내용을, 창세기 이후의 많은 성경들 속에 나타나 있는 이스라엘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고난 받으신 이야기들 속에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의 이야기로써만 받아들이며 읽는다면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듭난 우리는 성경을 읽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어떤 이야기를 하셨는지, 어떻게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기에 못 박히셨는지를 생각해 보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들 하나님을 통해서 이루신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신지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고 거듭난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도, 성경을 읽으며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이러한 사건들이 훗날 어떠한 사건을 일으켰으며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를 살피다 보면 그 속에 자기 운명도 함께 섞여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여자가 뱀의 목소리를 듣고 그 꾐에 속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정녕 죽으리라” 하셨습니다. 흑과 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창 1:4) 와 같은 방법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고 그 환경 속에 사람을 창조하셨는데, 사탄이 여인에게 사용한 방법은 조금 다릅니다. 흑과 백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마치 우리나라 속담에 ‘구렁이 담 넘어간다’는 식으로 여인을 조금씩 속여 갑니다. 순진한 이 여인은 먹어도 죽지 않으며, 먹는 날에는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뱀의 이야기를 듣고 나무 열매를 보니, 맛있게 생긴데다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지혜롭게 될 것처럼 보였습니다. 요한일서 2장에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16절) 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인류가 가진, 세상을 따르는 생각들입니다.
그렇게 여자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고 남편에게도 주니 그 남편도 먹었습니다. 운명을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첫 사람 아담과 두 번째 아담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 2:7) 는 말씀처럼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나무에 대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셨는데,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창 2:9 참조) 나무는 아주 특이한 창조물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탁자도 나무로 만들어졌고, 성경책도 나무에서 나온 것으로 만들어집니다. 집을 짓는다든지 어떤 물건들을 만들 때, 나무는 아주 중요한 재료입니다. 그런데 에덴동산에서 자라고 있던 이 나무들은 창세기에 나타나는 인류의 운명과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신명기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신명기 21:22-23)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왜 나무일까요?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나무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출애굽기에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 만드는 순서를 이야기하시는 내용이 있습니다. 또 성막에서 쓰이는 많은 물건들을 어떤 재료를 사용해서 어떤 방법으로 만들 것인가를 설명하시는데, 싯딤나무, 조각목과 같은 나무로 만들고 금으로 씌우라고 하십니다. 정금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등대와, 속죄소 위에서 두 날개를 뻗어 마주보는 그룹 형상뿐입니다. (출 25장 참조) 그룹 형상은 후에 솔로몬 성전이 지어질 때 나무로 만들어져 금으로 덧씌워집니다만 (왕상 6:22-28 참조) , 성막에 들어가는 기물은 정금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나무라는 것이 인류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또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는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담이 범죄하고 눈이 밝아지는 과정에서도 -물론 뱀이 하와를 속이고 하와를 통해서 아담이 실패하도록 했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시험은 나무였습니다.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는 많은 부분이 닮아 있습니다. 성경에는 ‘첫 사람 아담’과 ‘마지막 아담’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고전 15:45 참조) 또 로마서에는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5:14) 는 말씀도 있습니다. 아담은 실패했고 예수 그리스도는 그 실패를 뒤집으러 오신 분이지만 ‘아담’이라고 하는 두 사람이 겪는 일에는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우리는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먹음으로써 실패했다’고 간단하게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아담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께는 아담과 같은 시험이 없었습니까? 우리는 이 사실에 대해서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가장 사랑하는 여인,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창 2:23) 고 일컬었던 여인이 사탄에게 속아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고, 자신에게도 건네주었습니다. 아담이 그것을 먹은 것은 아내가 깎아준 과일을 남편이 포크로 찍어 먹었다는 식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복종의 문제입니다.
시험이 닥쳐온 순간에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받아먹은 것은, 그에게 주어져 있었던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창 2:16-17)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뒤집는 행동입니다. 사탄이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창 3:4) 는 말로 여인을 속였고, 그 말에 속은 여인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고 남편에게도 주었을 때, 남편이 그것을 먹음으로써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을 어기게 되었습니다. 시험에서 실패한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오신 예수께서도 사탄 앞에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돌들에게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사탄의 말에, 예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신 8:3) 라는, 구약에 기록된 말씀으로 마다하셨습니다. 또 천하만국을 보이며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는 사탄의 말도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마 4:10) 는 기록된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또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뛰어내리라고 하는 말에 대해서도 이기셨습니다. (눅 4:1-13 참조) 히브리서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브리서 4:15)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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