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11 - 2006년 8월 12일 강연
이 강연은 ‘태초에’ 2006년 8월 12일 강연을 정리한 것입니다.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창세기 2:23)
인류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마음“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1) 는 말씀을 시작으로 나타나는 창세기 1장, 2장, 3장의 이야기들은 우리가 영화로도 많이 보았고, 교회학교에 가면 가장 먼저 배우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또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창세기에 나오는 ‘이브’나 ‘아담’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는 ‘에덴’이라는 이름의 음식점도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첫 번째 사람인 ‘아담(Adam)’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만지는 흙, 곧 땅을 히브리어로 ‘아다마(adama)’라고 하는데, 히브리어에서는 ‘사람’이라는 말과 ‘땅’이라는 말의 근원이 같다는 한 언어학자들의 글도 있고, 땅이라는 뜻의 ‘아다마’는 사람이라는 뜻의 ‘아담’의 여성형이라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부터 우리가 살펴볼 내용 속에는 땅과, 하나님께서 땅에서 뽑아 만들어낸 사람의 관계가 분리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여자라는 한 사람이 아담의 몸에서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세상에 있는 많은 짐승들을 흙으로 만드신 것과 여자가 아담의 몸에서 나온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창세기 2:19)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짐승들을 흙으로 지으셨다는 말씀이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7절을 봅시다.
또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도 흙으로 지으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20절을 봅시다.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먼저도 말씀드렸듯이, “이름을 주니라”와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사이에 -한국어 성경에는 빠져 있습니다만- ‘그러나’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18절부터 읽어보시면 아담이 이름을 준 짐승들은 아담과 무언가 맞지 않는, 함께할 수 없는 존재였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창세기 2:18-20)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짝을 만들어 주어야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을 하신 후에 짐승들이 아담 앞으로 왔습니다. 아담은 각 짐승들을 보고 모두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담에게는 여전히 돕는 배필이 없었다는 내용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세상의 많은 사건들을 보여주시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대하고 계시지만 정작 하나님과 한 몸으로, 다시 말하자면 예수와 한 육체로 합할 수 있는 인격은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에스더서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와스디 왕후도 있었고 많은 처녀들도 있었지만 아하수에로 왕이 진심으로 사랑하고, 나라의 반이라도 떼어 주겠다는 마음을 가졌던 여자는 에스더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래 마음속에 품고 계셨던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1) , 그리고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창 1:2) 하신 사건들이 있기도 전에, 이 말씀이 기록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마음속에 품고 계셨던, 그리고 하나님께서 바라보고 계셨던 짝이 누구였던가 하는 것을 우리는 이런 말씀들을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 많은 인물들이 지나갔고, 많은 사건들이 있었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많은 표적과 말씀들이 주어졌지만 그들은 자신들 앞에 나타난 메시야를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때 십자가에서 흘러내린 피는 인류를 구원하는 피였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그 피는 오순절이 지나면서 세상에 전파되었습니다. 아담의 한 육체를 통해 세상에 많은 인류가 태어났듯이, 예수라는 한 사람의 몸속에 있던 피가 십자가에서 흘려짐으로써 우리 영혼에 생명이 주어졌고 그 생명이 세상 사람들에게 전파되어 많은 사람들이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그 교회의 비밀을 우리는 신약 성경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에는 아담에게 돕는 배필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함께할 짝을 취하시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담도 흙에서 만들어졌고 짐승들도 흙에서 만들어졌다고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담에게는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다는 말씀이 있지만 (창 2:7 참조) , 짐승들에게는 그런 표현이 없습니다. ‘그것이 왜 중요할까? 짐승들 코에도 생기를 불어넣으셨으니까 코뿔소 같은 것들이 킁킁 대며 숨을 쉬겠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창세기에, 특히 창세기 첫 부분인 1장, 2장, 3장에 나타나는 내용들은 인류 역사가 거쳐 갈 모든 사건들의 씨앗과 같은 내용입니다. 물론 다른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만, 특히 이 “태초에”라는 말씀에는 하나님의 많은 계획과, 훗날 일어날 사건들을 미리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시선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한 마디 한 마디를 자세히 생각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사람과 짐승은 서로 다릅니다. 짐승에게는 영이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무엇을 주고자 하시며 무엇을 바라고 계신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하신 말씀 속에 과연 지금의 우리가 포함되어 있을까요?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하실 때 우리가 그 속에 있었습니까? 아니면 내 어머니 모태에서 어머니의 난자와 아버지의 정자가 만났을 때, 그때 하나님께서 내 영혼을 불어넣어 주셨을까요?
이러한 내용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미 용서해 주셨고 나를 구원해 주셨다는 것을 믿게 된 경위를 뒤돌아보고 ‘이 방법이 아니었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볼 수 있습니다.말라기 2장 15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는 영이 유여하실지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취한 아내에게 궤사를 행치 말지니라
여기 ‘여호와의 영이 유여하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여유가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도 남을 만한 영이 있으시지만 그래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그런데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하면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저는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신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하셨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 항상 현재에 계시는 하나님, 앞을 전부 내다보실 수 있는 그 하나님께서 아담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는 그 때,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그 심정이 어떠하셨을까요?
우리는 자녀가 태어나기 전에 어떻게 합니까? 산모의 배가 불러오면 지인들, 친지들이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를 위해 옷을 선물하고 이불도 선물합니다. 가구도 준비합니다. 사람도 훗날 태어날 자녀를 위해 그렇게 준비하고, 또 아직 알지 못하는 그 아이에 대해 이미 사랑하는 마음을 품습니다. 사람에게도 그런 준비를 할 수 있는 마음이 있는데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사랑의 짝을 찾고자 아담을 만드시고 그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시는 그 때, 하나님께서 마음속에 품고 계셨던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은 얼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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