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년 12월 29일 저녁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야고보서 1:5)
예루살렘 왕 솔로몬의 깨달음
솔로몬이라는 사람을 보면 ‘어떻게 이런 사람이 태어나서 살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상에는 자기 목표를 달성하고 출세가도를 달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만, 자기 노력으로 되었건 유산을 받았건 그런 사람들에게서 볼 수 없는 것이 솔로몬이라는 사나이에게는 있었습니다. 얼굴이 남보다 못난 사람은 ‘나도 좀 잘났으면’ 하고, 키 작은 사람은 ‘더 컸으면,’ 너무 큰 사람은 ‘조금 작았으면’ 합니다. 인생에서 그것이 전부가 아닌데도 말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잘생기고 예뻐서 행복하다 해도 솔로몬만큼 사람이 추구하는 행복을 많이 누리고 살았던 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의 생애는 인간으로서 최대의 욕심을 다 채웠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 그 어떤 사람이 솔로몬이 겪었던 것을 똑같이 겪는다 해도 과연 솔로몬이 쓴 글 같은 글을 쓸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여” (전 2:9) 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솔로몬과 같은 삶을 누리고 나서 어떤 짧은 말은 남길지 몰라도 기억조차 없이 모든 것이 다 사그라질 것입니다. 자기가 저지른 짓과 함께 썩어 갔을 것입니다. 인간 역사 속에 ‘내가 이렇게 살았었노라’ 한 사람들이나, 역사, 사회, 예술 각 방면에 걸쳐 우리 기억을 거쳐 간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어도, 솔로몬만큼 화려한 인생을 겪고도 그만한 결과를 말할 수 있는 인생이 또 있을까요?
사람이 추구하는 행복은 그것이 돈이든 권력이든 지혜이든, 결국 자기의 절대 권위와 주장과 힘일 뿐입니다. 솔로몬은 살면서 별다른 걸림돌이 없이 그런 것을 이미 다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한 표본으로 ‘이렇게 살아본 결과 이러면 안된다.’ 하는 정확한 결론을 글로 남겼습니다. 다른 사람이 솔로몬같이 살았다면 망했을 것입니다. “인생들의 기뻐하는 처와 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전 2:8) 한 솔로몬처럼 처를 수없이 두었다가 이혼하게 되면 위자료로 재산을 다 없앨 것이기 때문입니다. 왕이 이웃나라 공주를 잘못 건드렸다가 침략을 당하거나 살해될지도 모르는 것이 인간의 역사 아닙니까? 솔로몬은 자기 인생에서 어떤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것은 다 막을 수 있는 강한 힘을 가진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난 소박하게 살다가 마쳐도 좋다’ 하는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꿈과 야망이 있고 남에게 뒤쳐지지 않고 제대로 한번 살아보겠다는 사람들은 그래도 세상에서는 난 사람들입니다. 예를 들어 시저, 나폴레옹, 히틀러, 무솔리니 같은 사람들은 뱃속에서부터 달랐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빨이 나 있었대요. 이상한 일 아닙니까? 인간을 연구하는 어떤 심리학자는 ‘그렇게 났기 때문에 이상히 여김을 받는 것에 대한 저항감으로, 커오면서 부딪히는 것에 대한 어떤 도전적인 의식이 생긴 것이 아니냐?’는 말도 합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그런 이상한 인생도 아니고, 다만 자기 아버지가 왕으로서 어쩌다 바람 피워서 얻은 부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왕궁에서는 멸시받고 자기 형에게 죽을 수밖에 없는 위험에 처해 있었는데, 그것을 무난히 돌파해서 결국 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누구의 눈치도 볼 것 없이 자기 원하는 것은 어느 누구도, 무엇도 막지 못하도록 하며 일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구했고, 그 지혜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년에는 그 지혜가 자기 육신의 삶을 위해 쓰여졌고 결국 자기 아버지가 저지른 것의 천 배 이상의 잘못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부인들이 몇 명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부인들 중에 한 여자를 사랑했는데,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였습니다.
솔로몬은 아버지보다 삶의 방법에 있어서 천 배를 더하고 살았는데, 그의 감정과 생각들 전체 속에는 사람으로서는 겨눌 수 없는, 측량 못할 무언가가 있습니다. 제가 책을 꽤 많이 읽어보았지만, 어느 누가 써 놓은 글 속에서도 솔로몬 왕만큼 ‘이렇게 살았었노라.’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정직하게, 선하게 살았다든가 남들 보기에 뛰어나게 살았다는 문제가 아니라, 솔로몬은 모든 인생이 갖고자 하는 최대의 욕심은 다 실행해 본 사람입니다.
“은금과 왕들의 보배와 여러 도의 보배를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와 인생들의 기뻐하는 처와 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전도서 2:8)
이것을 자랑이라고 늘어놓은 이 사나이. 이 절대적인 권력자 앞에서는 많은 여인들이 서로를 시기와 질투도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근처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누렸기에, 이런 삶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왕은 후비가 칠백 인이요 빈장이 삼백 인이라 왕비들이 왕의 마음을 돌이켰더라 솔로몬의 나이 늙을 때에 왕비들이 그 마음을 돌이켜 다른 신들을 좇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 부친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하였으니” (열왕기상 11:3-4)
이 말씀은 솔로몬의 인생 그대로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토록 많은, 천 명의 여인을 데리고 산 사람이 깨달은 것이 바로 전도서 말씀입니다.
이 사람이 부귀영화를 누린 것에 대해서, 그냥 ‘잘못 살았다’ 라고 말했다기보다는, 한 인류의 모델로서 자신이 살아온 일을 가지고 인생들에게 부탁한 것이 있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행복을 누리며 살아 온 과거를 되뇌면서, 겪었던 모든 일 속에서 인생살이가 아닌 한 가지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이렇고 저렇고 다 말하는 중에 그것이 아닌 한 가지 것을 전도서에서 말했습니다. 솔로몬은 그것을 말하기 위해서 전도서 12장까지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았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작은 행복이든 큰 행복이든 복을 누리면서 사는데, 솔로몬은 울타리 없는 인생에 어떤 경계를 쳐 놓았습니다. 성경에는 여호와의 말씀에서 떠나게 하는 지식에 대해서 못을 박아 놓고, 하나님 말씀을 버리지 못하게 하는 경계가 있습니다. 솔로몬은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과 인생살이의 뒤에, 어떤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이야기해 놓았습니다.
일천 남자 중 하나
“전도자가 가로되 내가 낱낱이 살펴 그 이치를 궁구하여 이것을 깨달았노라 내 마음에 찾아도 아직 얻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일천 남자 중에서 하나를 얻었거니와 일천 여인 중에서는 하나도 얻지 못하였느니라 나의 깨달은 것이 이것이라 곧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많은 꾀를 낸 것이니라” (전도서 7:27-29)
많은 여인과 함께 호화로이 산 솔로몬의 삶에는 솔로몬 자신의 꾀도 많이 들어갔을 것입니다. 이 지혜로운 사람이 많은 여인들과 상대해서 같이 살았지만, 자기가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고 말합니다. 여인들에게서는 그것이 없었습니다. 솔로몬의 부와 명예, 지위, 그 모든 것으로 봐서 그는 아무 여인이나 데리고 산 것이 아닙니다. 자기 부귀에 맞는 빼어난 여자들하고만 살았을 것입니다. 그녀들은 그저 이런 왕이 보낸 예쁘장한 딸, 저런 왕이 보낸 곱상한 딸, 이런 수준이 아니라, 어느 나라 왕궁에서든 최고의 교육을 받고 뽑혀 모든 부를 안고 왔을 것입니다. 그런 여인들에게서도 못 찾았던 이것이 무엇일까요? 그러나 일천 남자 중에서는 하나를 찾았다고 합니다. 남녀를 구별하는 이 말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여성을 하위로 돌리고 남성을 높이는 소리일까요?
하지만 이 전도서는 그렇게 볼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다만 자기 지위가 이러했었는데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왜 살아가야 되는지 참된 인생의 목적이 뭔가 하는 것을 넌지시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후세대 모든 사람들에게 교훈으로 남기는 이 사람의 솔직한 글이야말로 이 지구 역사가 지속되는 한 누구에게든지 알려져야 될 것입니다.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전도서 1:2-5)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니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유력자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 이는 시기와 우연이 이 모든 자에게 임함이라” (전도서 9:11)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다가 후에는 죽은 자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전도서 9:3)
이런 글들을 읽다 보면, 무언가 우리에게 암시해 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전도서를 읽고 허무주의에 빠져서 허무하게 살아라’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서를 읽으면, 허무주의에 빠져서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허무주의자가 정신을 차리게 됩니다. 전도서는 낙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를 따르라(follow me)’ 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모든 인생들에게 ‘이 사람이 삶의 초점’이라고 추천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바로 이 솔로몬입니다. 나름대로 잘났다고 하는 사람이 “나는 예전에 돈도 많이 벌어 봤고 모든 것을 다 가졌었다, 멋진 세월을 보냈는데 이제는 늙어서 힘이 없다.” 이런 말을 해도 솔로몬이란 사람의 표현에 비하면 별것 아닙니다.
이러한 솔로몬이 “일천 여인 중에서는 하나도 얻지 못하였느니라” 라고 말했다면, 그것은 ‘없었을 것이다’가 아니라 정말 없었던 것입니다. 반면 솔로몬은 “일천 남자 중에서 하나를 얻었거니와” 하는 말로 정말 있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솔로몬의 지혜입니다. 이것은 자기 아버지에 비해서 천 배나 더 강하게 산 사람이 자기 위치에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 인류의 조상이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도 하다’고 한것 때문에 인류는 이상한 운명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조상은 바로 아담입니다. “일천 남자 중에서 하나를 얻었거니와” 하는 말은 아담의 피를 이어받은 솔로몬이라는 사나이가 자기 인생의 허무한 데에서 먼 훗날 나타날 심판자이신 둘째 아담, 그리스도를 발견한 것을 말합니다.
아담은 창조주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지식 만능시대에 사람의 근본 지혜를 뒤엎는 엉뚱한 주장들이 세상을 휩쓸어, 성경에 기록된대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뒤집어버렸지만, 그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처음 조상 아담은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으로 만들어져서 자손을 번식시키는 일을 맡았습니다. 사람에게서 사람이 만들어지는 것이지, 원숭이에게서 사람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솔로몬의 일천 여인 중에서 없었다는 것은 인간이 유혹받을 수 있고 거기에 빠져 모든 것을 다 추구해도, 거기에서는 나올 수 없는 무엇을 하나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마음을 다 빼앗길 정도로 매혹적인 천 명의 여자와 함께 살았는데, 그 많은 여인들에게서 발견한 것은 그들에게는 허무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많은 처와 첩들로서는 진리를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유혹되어 살아온 자신이 힘이 빠져 늙었을 때, 여인들이 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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