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직 | 서울
나는 서울대학교 교수 집안의 6남매 중 공부도 운동도 잘하지 못하는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항상 형의 그늘에 묻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존재였다. 사람들은 나에 대해, 욕심과 불만이 많은 아이라고 했는데 특히 먹는 것을 나누어 줄 때 가장 심했다고 말했다.
그 시대에는 어느 집이든 장손 우대 사상이 아주 심했다. 부모님은 내가 초등학교를 입학할 때 형보다 못한 가방을 사 주셨고 유치원에도 보내 주지 않으셨다. 하지만 형에 대해서는 경기중학교에 못 가고 서울중학교에 간다며 안타까워하셨고, 형이 중학교에 입학하자 매일 영어를 가르치셨다.
나는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성적표를 보자는 말을 부모님께 들은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원서를 쓸 때도, 대학 진학 상담을 할 때도, 초등학교에서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는 항상 혼자였다. 특히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때가 어린 마음에 가장 슬펐던 것 같다. 울며 집에 오다 슬픔을 그냥 혼자 삭이고 말았다.
나는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했다. 그래서 자립심이 크다. 누구를 의지해 본 기억이 없다. 대학교 진학을 위해 공주로 내려간 것도 가족에 대한 내적인 불만과 반항심의 발로였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왜 살아야 하는지,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해 왔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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