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실이 아닌 믿음으로 얻은 구원
최광빈 | 안성
지옥처럼 혹독했던 유도부 생활제 고향은 전라남도 신안군 도초도라는 소금이 많이 나는 섬마을입니다. 그곳에서 저는 1970년 가을에 5남 1녀 중 다섯 번째로 태어났습니다. 그 후에는 항구 도시 목포에서 자랐지요.
5살 어린 시절에 볼거리에 걸려 벙어리가 될 뻔한 적이 있습니다. 그 후유증으로 말더듬이 왔고 한참 말할 나이에 말을 못 해 항상 말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에는 공부보다는 몸으로 하는 운동을 좋아했고 특히 야구를 좋아했습니다.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야구하면 제 이름이 불릴 정도로 잘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매일 동네 아이들과 산과 바다, 들로 놀러 다니는 것만 좋아해서 공부 안한다고 엄마에게 꾸중을 듣고 학교에서는 숙제를 안 해왔다고 기합을 받고 회초리를 맞았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아버지는 제가 공부보다는 운동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하셨는지 일찌감치 저를 운동선수로 키우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친구분이 감독으로 계시는 중학교에 유도 특기 장학생으로 입학을 시키신 것입니다. 저는 야구를 좋아했기에 야구부가 있는 중학교에 특기 장학생으로 가려고 3차 테스트까지 합격해 놓은 상태였고 형이 그 중학교의 야구 선수였기에 학교생활도 편하리라는 생각에 야구를 고집했지만, 아버지는 단호하게 야구하는 학교로 가면 자식으로 보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결국 유도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 그렇게까지 엄하게 말씀하신 이유는 공부도 잘하고 착실했던 형이 야구부에 들어간 후 변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형은 야구부가 창설되면서 야구부에 들어갔는데, 그 후 선배들의 폭행 및 금품갈취 등으로 과격해졌고 잦은 가출로 비행청소년이 되어 갔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신 아버지는 자식을 둘이나 잃을 수 없다는 생각에 심한 반대와 엄한 말씀을 하셨을 것입니다.하지만 유도부의 군기는 야구부에 못지않았습니다. 특히 ‘굳히기’ 시간에는 누르기, 조르기, 꺾기 등으로 고문 당하는 듯했고, 상급생의 금품갈취와 구타는 중학생이라 볼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을 괴롭히는 일이었습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습니다.
어느 토요일 오후 다른 아이들은 오전 수업만 하고 집에 돌아가는 것이
정회원으로 가입하시면 전체기사와 사진(동영상)을 보실수 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