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은
아, 드디어 봄입니다. 따뜻한 봄날이라고 표현하기엔 조금 차가운 날씨이지만요. 겨우내 입었던 긴 외투를 옷장 깊숙이 넣어 두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아직은 조심스럽네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목련의 새순이 눈에 들어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집의 창밖 풍경을 사실대로 표현하자면 가깝게는 지붕과 옥상, 멀게는 아파트 단지일 뿐이랍니다. 하지만 지금 제 마음속 창밖의 풍경은 새순이 단단하게 돋아 오르고 있는 목련 나무와 노란 개나리들이 피어 있는 초봄의 화단의 모습입니다.
목련의 새순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뽀얀 솜털이 촘촘히 박혀 있습니다. 어릴 적에는 솜털을 만지작거리며 ‘꽃이 징그럽게시리 뭔 털이 다 있노?’ 했더랬습니다. 그러다 사춘기 여학생이 되자 그 징그러웠던 털이 달리 보였습니다. 겨우내 하얀 솜털로 감싼 채 맺혀 있는 꽃봉오리 위로 밤새 쌓인 눈을 본 후부터는 그 순수함과 우아함에 반해 버렸던 것입니다.
나무 위에 피어나는 연꽃이라고도 불리는 목련은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꽃봉오리만 여문 채 눈보라 속에서 겨울을 나는 새 순, 잎이 나오기도 전에 먼저 활짝 피어나는 꽃송이, 그리고 노랗게, 또 갈색으로 변해 땅바닥에 후두둑 떨어져가는 꽃잎의 마지막까지. 목련꽃이 절정에 이르면 하얀 눈꽃송이처럼 화사하고 달콤한 향기도 뿜어냅니다. 길 가던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끌어 그들의 시선을 멍하게 만들어버립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며칠 가지 않아 언제 그랬냐는 듯 무거운 꽃잎들을 미련 없이 바닥으로 툭툭 떨어뜨립니다. 땅바닥에 떨어진 꽃잎들이 갈색으로 썩어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을 하얗게 덮었던 눈이 녹아 질퍽거리며 검게 변할 때의 그 지저분한, 심하게 표현하면 추한 모습이 떠오릅니다.
벚꽃이 함박눈처럼 피어 눈이 부시던 봄날이었습니다. 마침 지구대 앞에도 벚나무가 가로수로 심겨져 있었습니다. 그 덕에 낭만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경찰 아저씨들까지 ‘아이고, 우에 이래 참하게 피노!’ 하며 가장 풍성하게 핀 벚나무 가지를 꺾어 저마다의 순찰차 창틈에 꽂아 두었던 날이었습니다. 저는 최 경장님과 함께 지구대 사무실에서 소내 근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봄날의 따스한 기운에 점심 식사 직후의 식곤증까지 더하여 우리는 긴장이 풀리고 있었습니다. 천천히 졸음에 빠지려던 차에 우당탕 하는 큰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아이씨! 좋게 말할 때 이거 풀어라, 짭새 새끼들아!”
어떤 남자가 이렇게 소리를 지르며 사무실 바닥에 드러눕더니, 아기처럼 발을 공중으로 뻗어 휙휙 차대고 있었습니다. 양손은 수갑으로 결박되어 있었기에 어쩌지 못하고 대신에 자유로운 발로 답답한 심정을 표현하는 것이지요. 옷차림을 보니 흰색 와이셔츠에 검정색 정장바지, 검정 구두를 신었고 얼굴 생김새는 영화배우 이소룡을 꼭 빼닮아 귀여운 미남 아저씨였습니다. 졸음이 싹 가시고 무슨 사건인가 싶어 금세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곧이어 출동 나갔던 직원들이 들어오면서 한마디씩 합니다.
“어이고, 저 제비 새끼. 머슴아가 할 일이 그렇게 없나?”“아지매가 10살은 훨씬 연상이더구만. 누나야를 건드리긴 왜 건드리노?”“자식아!! 니 맘대로 안 된다꼬 사람을 그 지경으로 쥐어 패면 우야노!”“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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